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이지만, 이 틀에서 벗어나서 국제적으로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2009년 8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측 '특사조의방문단'이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박(MB) 대통령과 와 북측 조문단의 면담이 ”각국 조문단 접견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를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라고 표현했습니다. 남북관계가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MB가 북한 조문단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고 해외 조문단들과 같은 격식으로 만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동관, 패러다임시프트 주장… 남북관계, 잠정 특수관계→국가 간 관계돼야
1991년에 남북은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남북합의서 전문)라는데 합의했고, 이 규정이 이후 남북 교류·협력의 기본 전제가 돼왔습니다. MB 청와대는 이를 완전히 뒤집어 '국가 간 관계'로 만들겠다면서,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거대 담론 개념어까지 동원한 것입니다.
이는 사실상 MB정권의 실체였던 뉴라이트 세력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이 발언자가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뉴라이트'라는 표현을 작명하고 2004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이 신문의 '뉴라이트 기획' 보도를 주도해, 뉴라이트의 산파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동관 대변인이라는 점은, 이들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한국판 네오콘인 뉴라이트는,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 네오콘 득세기와 맞물리면서 MB정부를 창출하는 대성공을 이뤄냈으나, 미국 네오콘이 힘을 잃으면서 MB정부 마감과 함께 몰락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였습니다.
그들이 이제 윤석열정부를 매개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외교안보는 인물, 정책 모두 MB-뉴라이트가 장악한 상황입니다. 핵심 중 핵심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MB 청와대에서 대외전략비서관과 수석급인 대외전략기획관으로 4년 5개월간 근무했고, 조현동 주미대사와 이도훈 외교부 2차관, 이충면 외교비서관은 당시 행정관으로 김태효 비서관 밑에서 근무했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대령 시절 외교안보수석실 행정관으로 그의 지휘 아래 일했습니다.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 역시 그 시절 외교안보수석실 안보전략담당 행정관이었습니다.
이번에 통일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김영호 교수는 MB-뉴라이트 계열의 상징적 인물이라 할 만합니다. 그는 '뉴라이트싱크넷'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뒤 MB 청와대에서 통일비서관으로 김태효 비서관과 함께 일했습니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연합뉴스)
MB-뉴라이트, 윤석열 외교안보 완전 장악…김영후 후보자가 그 상징
윤석열정부는 이제 통일부를 실질적으로 형해화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입니다. "평화적 통일"(헌법 4조·66조)을 위한 "남북 대화·교류·협력"(정부조직법 31조)이라는 통일부의 존재 이유는 멀리 제쳐놓고, "그간 통일부는 대북지원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 달라질 때"(윤 대통령)라는 기조 아래 "자유민주적 통일방안 공감대 형성에 최선"(김 후보자)을 다하겠다고만 강조합니다.
통일부 안살림을 맡는 차관에는 27년만에 처음으로 외교관, 그것도 미국에서만 세 번 근무한 대표적 미국통 외교관인 문승현 전 태국대사를 임명했고, 그는 자신을 임명한 취지에 충실하게 취임 일성으로 ‘남북관계의 국제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과 통일부 연락관 격인 통일비서관 자리에도 북한인권 전문가를 앉혀,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MB정부는 통일부를 없애고 외교부 산하로 편입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확실한 여대야소였음에도 결국 '헌법위반', '통일포기'라는 비판에 밀려 실패했습니다.
그때와 달리 거대 야당까지 존재하는 현재 상황에서 불가능한 폐지 대신 조직의 성격을 바꿈으로써 실질적인 폐지 효과를 내려는 것이라 한다면, 그래서 MB정부의 뜻을 15년 만에 내용적으로 관철하려는 것이라 한다면, 남북관계를 외교에 종속시키려 하는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김정은 정권 타도, 흡수통일' 주창자를 다른 부처도 아닌 통일부 장관 후보로 내세운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1990년 12월 국토통일원을 통일원으로 개편한 이후 어느 대통령도 이런 인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붕괴론과 남북관계 국제화의 귀결은?
되살아난 MB-뉴라이트 통일외교안보, 이번에는 어떨까요? 뭔가 좀 다를까요?
MB-뉴라이트의 귀결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북한이 비판받아 마땅하나, ‘북한붕괴론’과 ‘남북관계 국제화’라는 기본 전제에 문제를 안고 있던 MB정부가 한반도 상황관리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이념 경직성이 심해 정책 유연성도 떨어집니다. 현재는 ‘북한 피로증’이 극심해 국민의 70%가 투코리아(two Korea)체제를 바라지만, 북한이 코로나19 국면을 마감하고 밖으로 나오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물꼬를 튼 북한과 일본이 대화를 본격화하면? 미국에서 트럼프나 또는 트럼프의 대북 접근을 지지하는 인사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바이든 대통령이 재집권한다 해도 북한에 대한 전략적무시 정책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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