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영웅’ 고 백선엽 장군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입니다. 3년 전 세상을 뜬 그가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그에 대해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친일파가 아니다. 제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며, 이 문제에 갓 한 달 된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습니다. 박 장관은 “제가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박 장관의 결기와 달리 기록은 이미 백 장군의 적극적 친일을 확정한 상황입니다. 백 장군은 1943년 2월부터 해방 때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근무했는데, 그는 회고록 ‘대 게릴라전-미국은 왜 패배했는가’ 일어판에서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라며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독립군 토벌을 시인하면서 비판을 감수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여러 차례 회고록을 내면서 이 같은 내용을 일어판에만 싣고, 한국어판에는 뺐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간도특설대-1930년대 만주, 조선인으로 구성된 친일토벌부대’라는 제목의 책을 낸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에 따르면, 백 장군의 창씨명은 백천의칙(白川義則), 시라카와 요시노리입니다.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 천장절 행사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죽은 상하이파견군 사령관과 한자까지 똑같습니다. 직접 공부했다는 박 장관이 이 같은 내용들까지 파악한 것일까요?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는 임의 시민단체가 아니라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대통령 소속 정부 기관입니다. 그리고 이 위원회가 백 장군을 다른 704명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규정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입니다. 법에 근거해 구성한 정부 위원회의 연구에 따른 결정을 검사 출신의 비전문가인 박 장관이 모조리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박 장관은 이날 방송에서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진보든 보수든지 간에 국민들한테 소상히 딱 밝혀서 투명하게 국민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그런 결과”를 강조했습니다. 백 장군에게도 이 잣대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요?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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