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 소초 장병들이 1일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내 설치되어 있는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통일부가 현행법상 금지된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과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한반도 전개로 북한이 무력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심리전'까지 재개된다면 자칫 접경지역의 국지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남북합의서 무력화로 '대북 심리전' 시동
통일부는 대북 확성기와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 개정하지 않고도 대북 심리전 재개가 가능하다는 법률적 검토를 마쳤습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는 추후 필요하다고 판단 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도 "어떤 특별한 조치를 특정하거나 염두에 두고 답변드릴 내용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대북전단 금지법의 법리 검토를 끝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통일부가 특별한 조치를 특정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밝힌 만큼 대북 확성기와 대북 전단 살포를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 △전단 등 살포를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부가 대북 확성기와 대북 전단 살포를 가능하게 만드는 법리검토를 마쳤다는 건 대북전단금지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무인기 영공 침범 사태 후 윤석열 대통령은 "9·19 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통일부가 주목한 대목은 남북관계발전법 제23조인데요, 2항을 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3항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국회의 체결·비준 동의를 얻은 남북합의서라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대북전단금지법의 근거가 된 9.19 군사합의와 4·27 판문점 선언은 국회 비준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대상이 아닙니다.
지난 2015년 북한군의 서부전선 포격이후 마을 주민들이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에 위치한 민방공대피소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 2014년에 전단 살포 반발해 고사포 발사
대북 확성기와 대북 전단 살포는 여야 상관없이 늘 문제가 됐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렸던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전단 문제를 놓고 북한과 충돌했습니다. 그해 9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파주시 통일동산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밝히자 북한은 거듭 경고했고, 박근혜 정부는 직접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단체는 대북 전단을 살포했고 북한은 연천군 중면 삼곶리 방면으로 14.5㎜ 고사포를 발사했습니다. 중면 면사무소에 총탄이 떨어지면서 우리 군은 K-6 중기관총 40여 발을 북에 대응 사격했습니다. 결국 연천군 일대에 전투준비태세 경보인 '진돗개 하나'가 발동됐고 지역 주민 60여명이 대피했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가 북한을 자극하면서 접경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킨겁니다.
2015년 8월에는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에 맞서 우리 군이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는데, 북한은 연천군 28사단 최전방에 배치된 확성기를 조준해 고사총 1발과 직사화기 3발을 발사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있을 당시인 2020년 6월, 이 전 지사는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하는 단체에 대한 긴급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 지사는 경기도특별사법경찰단에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위에 관용이란 없다. 관련 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해 즉시 수사를 개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인 올해 5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의약품과 대북전단 등을 20개의 대형 풍선에 실어 북한에 날려 보냈습니다. 풍선 아래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달렸습니다. 당시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민감한 남북관계 상황과 접경지역 주민들의 우려 등을 고려해 전단 살포는 자제돼야 한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봐도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제지가 적법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민간 대북전단 살포를 최초로 시작한 이민복 대북풍선단장은 지난 2015년 국가의 전단 살포 제지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관련해 대법원은 2016년 3월 "대북전단 살포행위와 휴전선 부근 주민들의 생명·신체에 급박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북한의 도발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옳다"면서 살포 제지가 가능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여권에선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폄훼하기도 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된 현 상황에서 대북 심리전이 재개되면 자칫 접경 지역 군사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용선 민주당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북 전단 살포도 문제지만 대북 확성기를 재개하는 것은 9·19 군사합의를 전면으로 파기하겠다는 것"이라며 "남북 간에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중요한 합의인데, (현 정부가) 무슨 목적으로 파기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고 전면 대결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의원은 국지전 유발 가능성도 우려했습니다. 그는 "대북 확성기가 재개되면 우발적 충돌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접경 지역이 위험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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