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천공 논란은 ‘가짜 뉴스’가 아니다.
2023-10-04 06:00:00 2023-10-04 06:00:00
윤석열 정부 들어 온갖 해괴한 일이 많았지만 뉴스토마토의 천공 의혹 보도 논란은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이상하다.
 
지난해 12월 김종대(전 정의당 의원)가 MBC 라디오 방송에서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천공이 (대통령 관저로 검토하고 있던) 육군 참모총장 공관에 다녀간 뒤 외교부 장관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뉴스토마토가 올해 2월, 그 고위 관계자가 부승찬(당시 국방부 대변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서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천공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남영신(당시 육군참모총장)이 보고받아 부승찬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뉴스토마토는 김용현(경호처장)과 윤한홍(국민의힘 의원)이 동행했고 승용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왔는데 뒷 차에 천공이 타고 있었다고 구체적인 정황을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김종대를 고발한 데 이어 뉴스토마토 기자들을 고발했고 경찰은 두 달 조사 끝에 “CCTV 영상을 다 살펴봤는데 천공이 나오는 장면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7월 KBS가 “김용현·윤한홍과 함께 관저를 방문한 사람은 백재권(사이버한국외대 교수)”이라는 보도를 내보내면서 사건이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검찰은 천공이 아니라 백재권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니 뉴스토마토 보도가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남는 의문은 세 가지다.
 
첫째, 처음 남영신에게 보고한 사람이 백재권을 천공으로 오해한 것인가. (둘 다 턱수염을 기른 흔치 않은 외모다.) 보고 체계에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어디에서 오해가 생겼는지는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굳이 수천 시간 분량의 CCTV를 돌려보지 않아도 될 일이다. 
 
둘째, 천공과 백재권이 따로따로 방문했을 가능성은 없나. 백재권이 방문했다는 사실이 천공이 방문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셋째, 오해한 게 아니라면 남영신이나 부승찬이 공연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의혹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검찰이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당장 부승찬과 남영신을 대질심문하기만 해도 실체가 드러날 텐데 검찰은 남영신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승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스토마토의 보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통령의 관저를 결정하는데 무속인의 도움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현장의 증언도 확보했다. 기사 가치를 두고 판단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옮겨온 것도 무속 신앙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상황이라 이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공적 책무에 해당한다. 
 
여기서 다시 세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첫째, 천공이 방문하지 않았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입증된 것인가. 검찰 역시 모든 CCTV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인정한 상황이다. 빠진 날짜도 있고 복구하지 못한 시간대도 있다. 
 
둘째, 천공이나 백재권이나 둘 다 무속인이다. 백재권이 방문했는데 천공이 방문했다고 잘못 보도했다면 그게 윤석열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가. 
 
셋째, 김종대나 뉴스토마토가 허위의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니고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는데도 명예훼손이 성립하는가. 
 
뉴스타파의 김만배 인터뷰 논란도 마찬가지지만 언론의 비판 보도를 ‘가짜 뉴스’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의혹은 해명하면 된다. 설령 기사에 오류가 있더라도 왜곡이라면 진실을 밝히면 되고 오보라면 바로 잡으면 된다. ‘가짜 뉴스’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정작 진실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말했던 것처럼 나쁜 메시지에 대한 해결책은 더 많은 옳은 메시지다. 
 
이 사건은 명예훼손 범죄 이전에 사실 관계의 다툼이다.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려면 주장하는 쪽에서 먼저 무엇이 허위인지 입증해야 한다. 설령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의혹 제기 과정에서의 근거와 의도를 확인해야 명예훼손 여부를 가릴 수 있다. 
 
놀라운 대목은 천공을 둘러싼 의혹에서 검찰이 진실을 밝히는 데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취재를 해야 하고 검찰은 수사를 해야 한다. 천공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당시 공관 관계자들에게 확인하면 간단할 일을 두고 왜 애먼 기자들을 괴롭히는가.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면 기자들과 소송을 벌이기 전에 진실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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