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잇따라 '수수료 무료'를 내세우며 출혈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업비트 독주체제에서 기를 펴지 못하던 경쟁사들이 기한 없는 무료 정책으로 초강수를 둔 건데요. 실제 수수료 무료 전환 거래소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치킨 게임에 참전하는 회사가 늘고 있습니다.
코빗이 빗썸에 이어 수수료 전면 무료를 내세우며 가상자산거래소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사진=코빗)
코빗, 메이커 인센티브 유지
2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코빗은 거래 혜택 3종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20일 시행한 수수료 전면 무료와 '메이커 인센티브', 가상자산 입금 이벤트를 합친 겁니다.
메이커 인센티브는 고객의 메이커 주문 체결 시 거래액의 0.01%를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메이커는 호가창에 매수·매도 잔량을 추가하는 주문입니다. 호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수 주문하거나, 높은 값에 매도 주문하는 식으로 호가창에 유동성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코빗은 이날까지 고객 4명 중 1명에게 인센티브로 약 10억원이 지급됐다고 밝혔습니다.
가상자산 입금 이벤트는 바이낸스 같은 코드(CODE) 트래블룰 솔루션 가입 거래소에서 보유 중인 100만원 이상의 가상자산을 코빗으로 입금한 고객 전원에게 5000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는 내용입니다. 코드는 빗썸·코인원·코빗의 트래블룰 합작법인입니다. 트래블룰은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코인 실명제입니다.
코빗이 적자를 감수하며 수수료 무료에 나선 배경엔 빗썸이 누린 사용자 증가 효과가 있습니다. 앞서 빗썸은 이달 4일 수수료 전면 무료를 선언했는데요. 이 정책 발표 당시인 4일 국내 거래소 점유율이 13.9%였다가 다음날인 5일 21%로 뛰었습니다.
코빗이 수수료 무료를 발표한 20일에도 빗썸의 전략은 유효해 보였습니다. 당시 국내 5대 거래소의 스팟(직전 24시간) 거래량 비율은 업비트 78%, 빗썸 20%, 코인원 0.94%, 코빗 0.2%, 고팍스 0.04% 순이었습니다.
하지만 23일 스팟 거래량은 업비트 독주로 회귀하는 모습입니다. 업비트가 82%로 회복한 반면 빗썸은 16%로 다시 떨어졌습니다. 그 뒤로 코인원 0.85%, 코빗 0.21%, 고팍스 0.05를 기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업비트의 은행 거래 편의성이 과점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한때 빗썸과 시장을 양분했던 업비트는 2020년 케이뱅크와 실명계좌를 제휴하며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현재 빗썸은 NH농협은행, 코빗은 신한은행, 고팍스는 전북은행을 이용합니다. 업계에선 코인원이 지난해 제휴 은행을 NH농협은행에서 카카오뱅크로 바꿨지만, 코인 시장 침체기를 맞아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빗이 자본잠식 등 감당 못 할 손해만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코빗 관계자는 "수수료 무료를 시행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효과에 대해 속단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내부에서 자본잠식 우려는 없다고 판단해 수수료 전면 무료를 결정했다"고 확언했습니다.
다만 '자본잠식 우려 없이 수수료 무료를 유지할 수 있는 기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원화 거래소 출혈 지속
경쟁사들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코인원은 "수수료 정책 관련과 관련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팍스 측은 "현재 가상자산 사업자(VASP) 변경 신고와 새 대표 선임, 고파이 등 회사 정상화에 조금 더 신경 쓰고 있는 상황"이라며 "고객들에게 드릴 수 있는 편익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잘 준비해 추후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일각에선 세계 단위로 움직이는 코인 시장에서 국내 점유율 기준으로 과점 체제를 논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나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올해 5월 바이낸스 거래량의 13%를 한국인이 차지했다고 8월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국내 업계에선 한국인이 이용하는 '원화 거래소'로서의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국내 시장 점유율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치킨게임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업비트 독주 체제를 뒤집기 위해서 경쟁사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효과가 미진했다"며 "그런 점이 누적되다 보니 절박해진 상황이 이처럼 수수료 전면 무료화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치킨게임으로 가서는 안 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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