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감사인을 변경하는 기업들의 경우 결산보고서에서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을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회계법인 종사자도 감사인 변경이 의견 거절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변한 만큼 파장이 예상됩니다.
감사인 교체에 따른 감사 기준 변화와 과도한 지적으로 재무제표를 수정하거나 감사의견이 변경되는 경우는 이미 빈번한데요. 상대적으로 회계 인력 등 회사의 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중소 상장기업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일부 상장기업들은 감사인 변경을 앞두고 비용 증가와 감사인과의 갈등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습니다.
감사의견 비적정 72%, 감사인 변경됐거나 변경 예정기업
30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지정감사제)’가 시행된 지난 2019년부터 작년까지 감사의견에서 최초로 비적정을 받은 상장기업은 유가증권 15곳 코스닥 60곳으로 총 85곳(12월 결산 기준)으로 집계됩니다. 이중 절반인 42곳이 감사인 변경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됩니다. 지정감사제가 도입되면서 내년도 감사인 변경이 예고된 기업(19곳)까지 더하면 전체의 71.8%에 달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지정감사제는 지난 2018년 시행된 신외부감사법에 따라 도입된 제도입니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것으로 2019년 도입 후 2020년 본격 시행됐습니다. 기업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할 때 3년간은 금융위에서 감사인을 지정받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시행 4년에 접어들며 대부분 기업이 지정감사제를 적용받았습니다. 일례로
삼성전자(005930)의 경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안진회계법인에 지정감사를 받았습니다. 제도 시행 직전 회계법인과 계약(3년)을 체결한 기업은 올해 사업보고서부터 지정감사제가 적용됩니다.
"감사인 변경, 의견거절에 영향"
실제 신외감법 시행 이후 감사의견 비적정이 증가했습니다. 2018년 43건이던 비적정 의견은 2019년 65건, 2020년 71건으로 급증했습니다. 2020년 정점 이후 2021년 68건, 2022년 53건으로 감소추세인데요. 비적정 의견이 정점을 기록한 2020년은 감사인 변경이 가장 많았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지정감사제 예고로 감사인 변경 기업은 2019년 611사에서 2020년 1021사로 410사 증가했죠. 지정감사제 적용 기업이 늘면서 2021년에는 621사로 다시 줄었습니다.
비적정 의견이 가장 많았던 2020년 최초로 비적정 의견을 받은 코스닥 상장사는 18개사(12월 결산)인데요. 이중 현재 거래가 재개된
태웅(044490)과
메디앙스(014100)를 비롯한 14개사의 감사인이 변경됐으며, 나머지 4개사는 지정 감사 예고로 2021년 감사인 변경을 앞둔 시점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감사인 변경이 진행될 때 감사도 더 엄격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감사인 변경이 감사의견 ‘비적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감사를 진행할 때 전수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샘플링을 하기 때문에 감사에서 회계 부실이 발견되지 않을 수가 있다”며 “변경된 감사인이 회계 해석에서 이전 감사인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비적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정감사제 도입 후 전·후임 감사인 간의 갈등이나 새 감사인과 피감사인(기업) 간의 회계 해석 차이 등이 의견 변화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입니다.
회계비용 가중, 중소기업에 직격…지정감사제 폐지 주장도
시장에선 '지정감사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올해 초 대한상공회의소는 지정감사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금융위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감사인과 피감기업 유착 방지 등 독립성 강화에 치중돼 감사 품질은 떨어지고 기업 부담만 증가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설명입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상장사 한 곳당 평균 1억2000만원 수준이던 감사보수는 2022년 2억7000만여원으로 급증했습니다. 비적정 의견을 받는 회사가 늘면서 감사의견이 변경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감사의견 변경은 2019년 8건(8개사)에서 2022년 23건(21곳)으로 늘어났습니다.
일각에서는 회계 투명성 강화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 입장에선 비용 절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관련 인원을 확충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회계법인이 교체될 시기가 다가올수록 회계사의 무리한 요구가 증가한다”며 “작년 감사 후 문제가 없다고 넘어갔던 부분을 다시 지적하는 등 증빙 요구도 늘면서 외부감사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올해 감사인이 변경되는 기업들은 기업 실적이 낮아진 상황에서 이전 감사인과 이견이 나올까 벌써부터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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