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취재팀은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11월 중순부터 한 달에 걸쳐 전국의 원·하청 노동자 459명을 만나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에 응한 노동자들 중 절반이 넘는 52.07%(239명)는 역대 정부에서 노동정책이 꾸준히 나빠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 이후 삶의 질이 개선됐거나 현장에서 재해가 감소했다는 답변은 2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자신이 하청기업에 일한다고 답한 노동자의 경우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더 컸습니다.
취재팀이 실시한 설문조사 문항은 총 13가지였습니다. 주요 문항은 △작업장 위험도 개선 상태 △재해율 추이 △산업재해 발생 형태와 원인 △원·하청 업무 위험도 △원·하청별 산재보상 방법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삶의 질 개선과 재해 감소 체감도 △박근혜정부부터 윤석열정부까지 노동정책 평가 △노동자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과제 등입니다. 산재 원인과 삶의 개선 과제 등 일부 문항에 대해선 중복 답변도 허용했습니다.
9일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 소재 사업장에 '안전제일'이라는 표식이 쓰여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고용부가 발표하는 산재 통계 믿을 수 있나?
고용노동부는 매년 노동 현장에서 발생한 산재를 집계해 발표합니다. 고용부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재해율은 0.65%였습니다. 2018년 0.54%와 비교하면 5년 사이 0.11%포인트 늘었습니다. 재해율이란 산재 발생 빈도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재해자 숫자를 산재보험 적용 노동자 숫자로 나누고 100을 곱한 겁니다. 숫자가 클수록 산재가 많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2022년 재해자 숫자는 13만348명으로, 2018년 10만2305명보다 27.41%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부 통계를 곧이곧대로 믿기도 어렵습니다. 정부 통계는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부로 접수돼 보험 처리가 인정된 산재만 집계됩니다. 기업이 노동자의 산재를 공상(사용주와 노동자가 재해에 관해 산재를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사용주가 노동자에게 개별 보상을 실시)으로 처리하거나, 개인비용으로 부담할 경우는 산재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하청에서 발생한 산재는 별도로 파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노동계에선 정부 통계에 잡힌 13만여명은 그나마 운이 좋다는 말까지 합니다. 산재로 인정돼 보상을 받기 때문입다. 하청 노동자 대부분은 보상은커녕 하소연도 못한 채 외면당하기 일쑤입니다.
노동자 459명 설문조사…안전관리 '낙제점'
취재팀은 노동 현장에서의 노동자들 체감도를 파악하고자 한 달에 걸쳐 전국 주요 공단 등을 돌며 459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우선 작업장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과거 1~2년 전과 비교해 개선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좋아졌다'(많이 좋아졌다, 좋아졌다)라는 응답은 23.09%(106명)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보통' 49.02%(225명)였으며, '나빠졌다'(나빠졌다, 많이 나빠졌다)는 대답은 27.89%(128명)였습니다.
재해율 추이를 묻는 질문에 '개선 중'이라는 응답이 24.18%(111명)였습니다. 반면 '정체됐다'는 답변은 50.33%(231명), '나빠지고 있다'는 대답은 25.49%(117명)로 집계됐습니다.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미지=뉴스토마토)
산재 발생 형태는 '부딪침·끼임'이 25.46%(304명)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깔림·넘어짐 20.27%(242명) △떨어짐 17.34%(207명) △유해물질 접촉 8.88%(106명) △절단 7.71%(92명) △화상·폭발·화재 7.20%(86명) △기타 5.36%(64명) △감전 5.11%(61명) △붕괴 1.76%(21명) △산소 결핍 0.92%(11명) 순이었습니다.
산재 발생 원인은 '구조물 등 위험물질 방치가' 20.72%(127명)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작업수행 소홀·과실, 절차 미준수 20.39%(125명) △관리자의 작업 강요 18.76%(115명) △기타 불안정한 행동 16.97%(104명) △설비·기계·물질의 부적절한 사용·관리 13.70%(84명) △복장과 보호장비 미흡 9.46%(58명)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위험물질 방치와 절차 미준수 응답이 높다는 건 기업의 부실한 안전관리가 산재 원인이라는 방증입니다.
특히 자신이 하청기업에서 일한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이번 질문에 응답한 경향을 살펴보면 구조물 등 위험물질 방치가 22.57%(93명)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관리자의 작업 강요 19.90%(82명) △작업수행 소홀·과실, 절차 미준수 18.45%(76명) △기타 불안정한 행동 15.29%(63명) △설비·기계·물질의 부적절한 사용·관리 14.98%(58명) △복장과 보호장비 미흡 9.71%(40명) 순이었습니다. 원청의 부실한 안전관리에 더해 무리한 작업 요구까지 이어지면서 하청 노동자의 산재가 줄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의 외주화…죽어서도 차별은 이어진다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의 유해·위험업무와 관련해 원·하청 노동자가 체감하는 위험도부터가 달랐습니다. 원·하청별로 업무 위험도에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차이 없다'는 답변은 26.58%(122명)였으나, '하청이 더 위험하다'는 대답은 59.91%(275명)나 됐습니다. 응답자들을 원·하청별로 나눌 경우 하청 노동자는 '하청이 더 위험하다'(75.60%, 220명)는 대답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원청 노동자의 경우 '차이 없다'는 응답이 46.43%(78명)였지만, '하청이 더 위험하다'는 대답도 32.74%(55명)였습니다. 원·하청 노동자 모두 대체적으로 하청 노동자가 더 위험한 일을 맡는 걸로 인식하는 겁니다.
자신이나 동료의 산재보상 방법에 관해 묻자 '산재보험 처리'는 50.31%(243명)였지만 '공상 처리'도 34.58%(167명)나 됐습니다. 심지어 △개인비용 부담 9.11%(44명) △치료 없음 6.00%(29명) 사례들도 존재했습니다. 정부가 3월 발표한 2022년도 산재현황 통계가 산재보험 처리가 된 재해자에 국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실제 작업장에서 일어난 산재는 정부 집계의 두 배를 넘는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산재 보상에서도 원·하청 간 차별이 두드러졌습니다. 원청의 경우 '산재보험 처리'는 64.25%(115명)였고, △공상 처리 22.91%(41명) △개인비용 부담 7.26%(13명) △치료 없음 5.59%(10명)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청은 '산재보험 처리'가 42.11%(128명)에 불과했습니다. '공상 처리'는 41.45%(126명)나 됐습니다. '개인비용 부담'은 10.20%(31명), '치료 없음'은 6.25%(19명)로 나타났습니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사각지대가 상당한 겁니다.
산재 후 작업 복귀, 사후관리에 원·하청 간 차별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68.63%(315명)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2022년 1월10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고 김다운 전기 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과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윤석열정부 노동정책 혹평…중대재해처벌법 효과 '부정적'"
사실 노동 현장에서 위험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산재보험 처리에도 차별이 존재한다는 건 다소 역설적입니다. 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 모두 대선 공약으로 노동환경 개선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10대 공약을 제시했는데, 7번째가 '근로자의 삶의 질 올리기'였습니다. 세부 내용은 △장시간 근로 관행 개혁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등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대 대선에서 '사람이 먼저다'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공약집에도 노동관련 내용이 많이 담겼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연장근로 막는 '칼퇴근법' 도입 △비정규직 감축과 처우 개선 △하청에 대한 원청기업 책임 강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 △노동존 중을 위한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 설립 △체불임금 제로 시대 △노동조합 가입률 상향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20대 대선 공약집에 산재 취약부문에 대한 예방강화,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노사관계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수록했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마련한 국정과제에도 △산재 예방 강화 및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지원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 △고용안전망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취재팀이 만난 노동자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역대 정부 모두 선거에서 노동계 표심을 의식해 그럴듯한 공약을 내세웠을 뿐, 실제로는 이행할 의지가 없었다는 겁니다. 또 역대 정부를 거치며 노동정책이 더 나빠졌다고 꼬집었습니다. '역대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52.07%(239명)가 '꾸준히 안 좋아지고 있다'고 답했으며,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는 응답은 16.56%(76명)에 그쳤습니다. 정부별로 보면 '문재인정부가 잘했다'는 대답이 29.63%(136명)로 가장 많았습니다. '윤석열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09%(5명), '박근혜정부가 잘했다'는 응답은 0.65%(3명)에 불과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에 대한 체감도 역시 부정 인식이 많았습니다. 법 도입 후 '노동 여건과 삶의 질이 개선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좋아졌다'(많이 좋아졌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17.65%(81명)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보통' 62.02%(285명)였으며, '나빠졌다'(나빠졌다, 많이 나빠졌다)는 대답은 29.26%(93명)였습니다. 법 도입 후 재해 추이를 묻는 질문에 '좋아졌다'(많이 좋아졌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18.52%(85명)였습니다. '보통' 60.13%(276명)였고, '나빠졌다'(나빠졌다, 많이 나빠졌다)는 대답은 21.35%(98명)였습니다.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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