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바위그림)알타 암각화를 향해 국경을 넘다, 무르만스크에서 시르케네스로!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27)
2024-06-03 06:00:00 2024-06-03 08:41:45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로보제로 → 무르만스크 → 시르케네스 → 알타. 사진=구글지도 편집
 
무르만스크주 향토역사박물관의 바위그림 전시물
 
로보제로 박물관에 보존된 찰림-바레 암각화 바위를 직접 보지 못해 아쉬움을 간직한 채, 다음날 아침 무르만스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로보제로에서 무르만스크까지는 세 시간 남짓 걸린다. 다음 목적지는 암각화가 있는 알타인데, 무르만스크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의 시르케네스를 거쳐 알타로 가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대(對)러시아 제재로 인해 항공편은 오래전에 중단됐지만 버스는 운행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떠날 때만 해도 상황을 알 수 없어 이 일정은 가능성으로만 열어두었었다. 러시아인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알아보니 인원이 채워지면 버스는 출발한다고 했다. 그런데 누가, 어떤 절차를 통해 제재하의 러시아에서 북유럽 국경을 넘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다음날로 미루고 무르만스크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됐다. 시르케네스행 버스는 매일 새벽 6시 반에 있어 다음날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무르만스크시에 위치한 '무르만스크주 향토역사박물관' 전시실. 사진=박성현
 
무르만스크 시내에 있는 향토역사박물관은 방문을 권하고 싶은 곳이다. 이전 겨울 처음 무르만스크를 찾았을 때 둘러보았는데, 무르만스크주 전체에 대한 박물관이기 때문에 콜라반도의 역사와 자연환경, 문화유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콜라반도의 암각화와 관련된 전시물이 있어 무르만스크시 외의 지역을 방문하기 어려운 관람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칸달락샤의 돌미궁과 히비니산맥의 희귀한 돌들도 소개돼 있다. 전시실에는 카노제로호수의 카노제로 암각화와 포노이강의 찰림-바레 암각화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퍄이바강의 선각화 및 암채화와 관련된 자료도 보인다.  
 
칸달락샤 돌미궁 모형(좌)과 콜라반도 바르지나만의 미궁에서 발견된 고래 척추뼈(우). 무르만스크주 향토역사박물관. 사진=박성현
 
퍄이바강은 콜라반도 북단에 돌출해 있는 리바치반도에 있으며 바렌츠해로 합류하는 강이다. 1985년 합류지점 근처 강의 오른쪽 기슭에서 22개의 암채화와 5개의 선각화 패널들이 발견됐는데, 암채화 2개만 동물 형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기하학적 문양(기하문)이다. 이 바위그림 그룹은 ‘퍄이바-갤러리’라 불린다. 1986년에는 이 지점으로부터 1㎞ 떨어진 마이카강 왼쪽 기슭의 동굴에서 붉은색 암채화가 하나 발견됐다. ‘마이카-동굴’로 지칭되는 이 그림은 수평으로 누워 있는 어류 이미지와 그 위에 수직으로 서 있는 두 명의 인간 형상으로 구성돼 있다. 2021년에는 퍄이바강 암채화에 기하문 3개가 추가됐다. 이곳의 바위그림은 작은 규모지만 비슷한 기하문 암면들이 모여 있는 독특함이 있다. 그중에는 미궁을 연상시키는 형태도 있어 더욱 흥미롭다.
 
바위에 있는 '퍄이바-갤러리'의 암채화와 선각화의 위치. 무르만스크주 향토역사박물관. 사진=박성현
 
마이카강 동굴의 암채화. 무르만스크주 향토역사박물관. 사진=박성현
 
그런데 도대체 이 문양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하문 바위그림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여럿 존재하는데, 천전리 암각화의 기하문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기하문에 대해서는 자연현상 또는 대상을 상징적·추상적으로 묘사했다는 해석, 그 당시 사람들의 기원이나 주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 등 여러 의견이 제시돼 왔지만, 결국은 모두 후대인의 ‘해석’과 추측일 뿐이다. 한편, 기하학이 수학의 한 분야이고 수학이 철학과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바위그림의 기하학적 문양은 고대인들의 철학적 사유 내지 사유구조를 반영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덧붙여서, 암각화 지역의 여러 지명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한참 후대에 만들어진 지명을 수천 년 전에 제작된 바위그림과 직결해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지명에는 그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고려해 볼 만하다. 예를 들어, 구 코미족-사미족 마을 외곽에서 발견된 ‘찰림-바레’ 암각화의 ‘찰림-바레’는 사미어로 ‘눈-야산(또는 숲인 야산)’을 뜻한다. 숲으로 된 야산은 사냥꾼들이 야생사슴을 찾던 장소로, 마을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찰림-바레는 그래서 ‘숲의 눈’ 또는 ‘보이는 숲’의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노르웨이 국경으로 가는 길에 만난 역사, 그리고 현실
 
버스의 출발지점인 무르만스크시 폴랴르니조리호텔에서 도착지점 시르케네스 공항까지는 약 230km로 세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거기에 국경 통과시간을 보태면 되겠지만, 전쟁과 제재라는 특수한 조건하에서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보다 앞서 러시아 측의 검문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버스가 지체되기도 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나는 러시아 승객들에게 해외로 나가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대부분 대답을 꺼려하며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럽 국가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솅겐협약 가입국 중 한 나라의 비자를 받아 협약국 어디로든 입국할 수 있는 건 예전과 같지만, 비자 받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한다. 솅겐국가 중 비자 발급이 상대적으로 쉬운 나라도 있는 듯했다. 나는 나중에, 무르만스크에서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의 시르케네스로 갈 때와 핀란드 헬싱키에서 국경을 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올 때의 두 버스 승객들 간에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물론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나가는 게 들어오는 것보다 어려운 탓도 있지만, 승객 구성에 있어서도 나갈 때는 평범한 국내 러시아인들이었는데 들어올 때는 북유럽에 정착한 이민자 러시아인들이 눈에 띄었고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르만스크에서 시르케네스로 이동 중인 버스에서 바라본 광경. 사진=박성현
 
러시아-노르웨이 국경에 다다르기 전, 러시아 측의 검문이 몇 차례 반복된다. 멀리 표지판에 '티토프카강'이라 쓰여 있다. 사진=박성현

 
무르만스크와 시르케네스의 중간쯤 버스가 휴식을 위해 정차했을 때 기사가 건너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쪽에 가보라고 권한다. 가보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대에 대항해 소련 북극지방을 사수하다 죽어간 병사들을 추모하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스타라야(구) 티토프카’라는 불리는 이 땅은 당시 격전지였다. 사실 러시아와 노르웨이의 국경지대 전체가 전쟁지역이어서 강과 주위의 툰드라 산지에는 수류탄과 탄피, 불발탄과 철조망, 발견되지 못한 유해 등 전투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니,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비무장지대의 유사한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순록이 풀을 뜯는 대신 병사들의 유골이 쌓여갔을 이곳의 툰드라는 전쟁의 상흔을 안은 채 고요하고, 역시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비무장지대는 휴전의 세월 동안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됐다. 
 
'티토프카 방어선'에서 희생된 병사들을 추모하는 티토프카강 근처의 오벨리스크. 스타라야(구) 티토프카. 사진=박성현
 
오벨리스크의 한쪽 옆에는 ‘티토프카 방어선’ 공공역사-향토사전시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트레일러 안에 만들어졌는데, 전쟁의 흔적을 보여 주는 다양한 전시물이 보인다. 그중 특히 한 사진에 눈길이 꽂혔다. 1941~1944년 사이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 고지들이 있는 지역으로, 당시 병사들이 ‘죽음의 계곡’이라 불렀던 곳이다. 자파드나야리차(Западная Лица)강을 따라 전선이 형성되면서 강 서쪽의 독일군 및 동맹인 핀란드군과 강 동쪽의 소련군 사이에 전투들이 발생했고 양측의 전사자들은 강 옆의 눈 덮인 고지들에 쌓여 갔다. 순록스키부대원들도 여기에 누워 있다. 후에 기념단지가 조성되면서 ‘죽음의 계곡’은 ‘영광의 계곡’으로 불리게 됐다. 휴식 지점에 도착하기 30분쯤 전, 달리는 버스 차창 너머 멀리에 ‘영광의 계곡’ 단지에 서 있는 기념비가 조그맣게 보였었다. 직접 가 볼 수는 없었지만, 기념단지 한쪽에는 수천 명 전사자들의 대규모 매장지가 있고 군인들의 유서가 새겨진 화강암 비석이 있다고 한다. 부언하자면, 무르만스크시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알료샤 동상은 ‘북극의 수호자’인 무명용사들을 대표하는 상징인데, 그가 바라보는 먼 곳의 방향이 바로 콜라만의 수면 너머 서쪽, ‘죽음의 계곡’이다.
 
스타라야(구) 티토프카에 위치한 '티토프카 방어선' 공공역사-향토사전시관의 외관. 사진=박성현
 
'티토프카 방어선' 공공역사-향토사전시관 내부에 있는 '죽음의 계곡' 사진. 사진=박성현
 
'티토프카 방어선' 공공역사-향토사전시관 내부. 사진=박성현
 
국경을 넘어 시르케네스에서 알타로!
 
드디어 국경에 다다랐다. 러시아 승객들은 준비해 온 두툼한 서류를 들고도 몹시 긴장한 표정들이었는데, 그중 두 명에게 문제가 있어 나머지 승객들은 계속 기다려야 했다. “아마 통과하기 어려울 겁니다. 버스 기사가 판단해 출발하면 됩니다.” 기다리던 내 질문에 밖에 서 있던 노르웨이 관계자가 대답했다. 결국, 외국친구 방문 목적을 가진 통·번역가 여성승객은 나왔지만, 목적이 불분명하고 서류가 미비했던 남성승객 한 명은 통과하지 못했다. 돌아올 버스표도 구매하지 않은 채 쉽게 통과한 나로서는 한국의 ‘여권 파워’에 더욱 감사할 뿐이었다.
 
국경 통과 후 노르웨이 쪽의 모습. 버스 승객들이 아직 통과하지 못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성현
 
버스가 시르케네스 공항에 도착했다. 시르케네스는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의 공습으로 고통을 겪은 역사적 도시라 잠시라도 둘러보길 기대했지만, 국경에서 두 시간 이상 지체되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알타행 탑승을 기다리기로 했다. 짧은 비행 후 마침내 알타 암각화가 가까워졌다!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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