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화재사고가 이전에도 몇 차례 있긴 했지만, 이렇게 크게 화재가 난 건 처음입니다.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놀라서 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맞은편 공장 건물 위로 검은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25일 경기 화성시 전곡산단, 화재사고를 수습 중인 아리셀 공장 인근에서 근무하는 이모(42)씨는 “사고 직후 회사 직원들과 면사무소로 바로 대피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외국인들이 많이 일하는데 사망자가 나와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이번 화재는 전날(24일) 오전 10시30분쯤 전곡산단 내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했습니다. 화재가 난 아리셀 공장 3동 2층은 리튬 전지 완제품 검수와 포장이 이뤄지는 장소입니다. 사고 당시 리튬 전지 완제품 3만5000여개가 보관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 발생 직후 배터리들이 연쇄 폭발하면서 연기가 올라온 지 15초만에 작업실 전체를 뒤엎었습니다.
25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화재 발생 22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 8시48분쯤 불은 진압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총 23명이 사망했고 8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사망자는 한국인 5명, 중국인은 17명, 라오스인 1명 등입니다. 한국인 중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이 1명 포함돼 있습니다. 성별로는 남성 6명, 여성 17명입니다.
당초 발표됐던 실종자 1명은 오전 수색을 통해 화재 현장에서 발견됐습니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이날 현장 브리핑을 통해 “오전 7시부터 수색에 투입된 인명구조견이 지목한 장소를 중심으로 집중 수색을 실시한 결과, 오전 11시30분경 실종자 위치를 확인하고 시신 수습을 마쳤다”고 발표했습니다.
시신 수습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면서 오전 10시30분으로 예정됐던 합동 감식도 1시간 이상 늦게 시작됐습니다. 감식에는 경찰과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안전연구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관리공단 등 9개 기관에서 4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오석봉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합동 감식에 앞서 “정확한 발화 장소와 원인을 규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감식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25일 아리셀 건물 화재 현장에서 현장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25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일차전지 제조 공장 아리셀 건물 화재 현장. (사진=뉴스토마토)
사망자들은 아리셀 공장 3동 2층의 발화지점과 연결된 작업장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방당국은 사망자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들로 공장 내부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점이 피해규모를 키웠다는 내다봤습니다. 화재예방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2층 출입구 앞쪽으로 대피했다면 인명 피해가 줄어들었을 텐데, 막혀 있는 작업실에 몰렸다”며 “외국인 근로자들 가운데 용역회사에서 파견을 받아 근무하는 형태가 많아 공장 내부 구조를 잘 알지 못한 점이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요인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훼손 심해 시신들 국과수 인계
현재 시신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한국인 사망자 2명뿐입니다. 대부분이 화재로 인해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면서 신원 확인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겁니다. 시신들은 송상장례문화원과 화성장례문화원·함백산추모공원·화성유일병원·화성중앙종합병원 5곳에 분산돼 안치됐지만 아직까지 빈소가 차려진 곳은 없습니다.
송상장례문화원에 안치된 시신 중에는 신원이 확인된 아리셀 직원 A씨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신은 이날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인계됐습니다. 사인 규명을 통해 화재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망자 대부분도 국과수 부검을 거쳐야만 신원 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외국인 사망자가 상당수인 만큼 시신이 유가족에 인계되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경기 화성시 송산면에 위치한 송상장례문화원의 텅 빈 빈소. (사진=뉴스토마토)
장례식장은 적막 속에서 취재진과 장례식장 관계자들만 보일 뿐 유가족들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송상장례문화원에서 대기하던 A씨의 유족들도 그곳 사무실에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눈 이후 취재진을 피해 자리를 피했습니다.
사망자 유가족 지원과 사고 수습을 위해서 경기도와 화성시는 이날 화성시청에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했습니다. 통합지원센터는 해당 기관들과 협조해 빠른 시간 내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유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해 합동분향소 설치 등 향후 다양한 지원방안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이날 경기도청사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외국인 노동자 지원과 관련해 불법 체류자 지원도 강조했습니다. 김 도지사는 “어떤 이유로 한국에 왔는지, 심지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불법체류를 하신 분들이라도 경기도에서 일하시다 희생되신 분들이니까 따지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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