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준비된 죽음'을 원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국회 차원에서의 입법 논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가 들어서자마자 21대 때 폐기됐던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보완해 별도 제정법으로 발의했는데요. 의사단체는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조력존엄사는 약물 처방 등 의사의 조력이 필수인 만큼 법안이 통과되려면 의사단체의 협조가 관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보완된 존엄사법, 조만간 공청회
지난달 5일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조력 존엄사를 요청할 때 담당 의사가 약물 처방 등으로 도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법안은 조력 존엄사 희망자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대상자 결정을 신청하고, 이를 심의·결정할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두도록 했습니다.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 적용이 배제된다고도 명시했습니다.
한국은 지난 2018년부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존엄사만 허용되고 있습니다. 환자가 약물 처방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조력 존엄사'나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직접 투여하는 '안락사'는 모두 금지되고 있는데요.
지난 21대 국회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조력 사망을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 기존 연명의료법 개정안으로 발의했다 천주교와 의사협회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해당 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 중단돼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며 폐기됐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별도 법안으로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은 국회 공청회 등을 통해 공론화를 거칠 예정인데요. 안규백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 추가 진행 사항은 없지만 조만간 여야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들을 대상으로 공청회 개최를 요청할 생각"이라며 "제정법은 공청회를 진행하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21대 때 한번 폐기된 바 있는 만큼 의사단체의 입장을 충분히 보완했다는 입장인데요.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의 경우 기존 법안에서는 15명이었지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의사단체의 입장을 반영해 25명으로 늘리면서 과반을 의사로 하게끔 규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법안 통과를 기다리기가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며 "해외 여러 입법례를 참고해 법안을 보수적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OECD '자살 1위국' 오명…"생명 경시 부작용↑"
보완 입법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여전히 원칙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의사가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에게 자살약을 처방하고 주입하는 행위는 '치료자'라는 의사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는 건데요. 향후 의료인이 지게 될 수 있는 형사책임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입니다.
의사단체인 의료윤리연구회는 "조력자살 합법 국가에선 자살 충동을 치료받으러 온 우울증 환자에게 조력자살을 권하는 등 이미 생명 경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을 전 세계가 목도하는 즈음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자살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조력자살법을 발의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최근 정례브리핑을 통해 존엄사법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지 않으면서도 환자가 의미 있는 삶을 사는데 기여할 수 있는 연명의료중단 관련법이 불과 2016년에 제정됐다는 설명인데요.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조차 안정적인 정착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없는 데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법령 정비와 제도개선을 통해 충분히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채동영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부대변인은 "생명에 대한 논의인 만큼 의사협회는 해당 법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면서도 "의사 보호 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번 얘기를 했지만 여전히 충돌되는 부분들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공청회 등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다면 그때 논의를 하겠다며 입장을 열어뒀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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