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 운용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중국의 핵전력 증강과 북한·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한 핵 위협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비한 건데요. 탈냉전 이후 30여년간 고수해 온 '핵감축 기조의 퇴조 신호탄'으로 자칫 핵 경쟁인 각국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백악관 국빈 만찬장에서 러시아와의 수감자 교환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중·러 '핵 위협' 고조…억제력 강화 수순
22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북·중·러의 협력에 따른 핵 위협을 고려해 핵무기 운용 전략을 재조정한 '핵무기 운용 지침' 개정안을 승인했습니다.
핵무기 운용 지침은 4년마다 개정되며 극비 사안이기 때문에 디지털로 문서화되지 않고 인쇄된 복사본에 대해서도 극소수의 고위 안보 관리만 회람할 수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핵무기 운용 지침의 상세 내용까지 알려진 건 아니지만 중국의 급격한 핵전력 확대에 초점을 맞춘 핵 억제 전략이라는 게 미국 내 언론의 분석입니다.
미 국방부는 중국의 핵무기 보유고가 2030년까지 1000기, 2035년까지 1500기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현재 60기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무기 제조 원료인 핵물질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는데요.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중국의 핵탄두는 2014년 250기에서 올해 초 500기로 두 배가량 늘어났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총 90기의 핵탄두에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러시아도 지난해 2월 미국과 체결한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으며, 우방국인 벨라루스에 전술핵까지 배치했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현재 558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강화와 중국의 연대 가능성, 파키스탄·이스라엘 등이 핵무력을 증강시키고 있어 미 당국이 대비책을 마련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21일(현지시간) 션 새벗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VOA>에 "우리는 러시아, 중국,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대해 반복적으로 우려를 표명해 왔다"며 "우리는 억지력을 강화해 핵 위험을 줄이고 군비 통제 외교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는데 계속해서 노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해군 핵추진잠수함 '미주리함'(SSN-780·7800t급)이 17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 세계 군비 확산 추세…국내 방위비 영향 불가피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대표적 핵 비확산론자입니다. 그는 핵무기 의존도 감축을 내세웠고, 핵무기 선제 불사용 원칙을 명문화하는 방안도 추진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핵무기 운용 지침을 마련한 건 국제 정세의 영향이 큽니다. 미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 대행으로 근무한 바 있는 핵 전략가 비핀 나랑은 싱크탱크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대담에서 북·중·러 결속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아직 (핵무기) 비축량을 늘릴 필요는 없지만 우리 적들이 현재의 길을 계속 걷는다면 배치된 역량의 숫자를 조정하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미국 민주당 개정 정강에도 "러시아, 중국, 북한이 그들의 핵무기고를 확장 및 다양화하는 가운데 세계가 직면한 강화된 핵확산 도전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3축(전략 폭격기·전략핵잠수함·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은 억지력 능력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담겼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군축 협정이 축소되면서 미국도 결국엔 탈냉전 이후 30여년 간 고수해 온 핵 군축 기조를 버리고 핵 군비 경쟁에 참전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미국은 냉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지만 주변국도 영향을 받아 군비 확산 레이스에 돌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때는 '강한 미국'을 표방, 대중 견제를 고리로 핵군비 경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각국의 군비 경쟁, 핵 경쟁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요.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부담할 몫을 정하는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분담금은 주한미군이 고용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와 미군기지 내 군사시설 건설비, 탄약 관리·수송 지원·물자 구매 비용이기 때문에 군비 경쟁과 무관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략자산 전개 등 핵 억제를 위한 전략자산 전개를 위한 또 다른 협의체를 위한 추가 비용 청구서로 날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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