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헌나1' 결정. 대한민국이 숨죽인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고작 21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70년(당시 기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법에 의한 대통령 강제 퇴진의 그날.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재판관 8인의 전원일치.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3·10 법치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탄핵 선고의 이유는 간명했습니다. '피청구인 파면에 따른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단순한 진리. 헌법은 명명했습니다. 민간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은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고. 피의 민주주의로 일군 87년 헌법은 거대한 부조리극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추악한 권력 만용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에 내재된 정언명령. 위임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도 예외 불가.
박근혜의 또 다른 자아 '최순실'
불행의 시작은 '데미안'의 부재. 번번이 알을 깨지 못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종착지는 구중궁궐. 이념에도 사람에도 갇혔습니다. 레드팀은커녕 주변에 십상시만 넘쳐났습니다. 문정왕후 폐위를 획책한 조선 최악의 '간신배' 김안로만 판쳤습니다.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한 정치인에겐 '배신자' 프레임을 덧씌웠습니다. 공복과 모리배를 구분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셈입니다.
그 결과는 민간인의 국정농단. 간신배에 둘러싸인 박 전 대통령의 최후 선택은 또 다른 자아 찾기. 최순실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민간인이 대통령의 자아를 빼앗은 순간, 그의 이드(인간의 원초적인 충동)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습니다.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하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초자아는 완전히 붕괴됐습니다.
참혹했습니다. 헌법의 최후 보루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모자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습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부역자들의 법치 유린도 박 전 대통령의 책임으로 적시했습니다. 주권자의 요구를 외면한 불통도 헌정사상 초유의 파면 결정에 한몫했습니다.
윤 대통령·김건희 '데미안'
본지는 지난 5일자 1면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4·10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제22대 총선 과정에서 김 여사가 5선의 김영선 당시 국민의힘 의원에게 지역구 변경(경남 창원 의창→김해갑)을 요청했고, '김건희·김영선' 관계에 민간인 M 씨가 개입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입니다.
보도 직전 본지는 대통령실에 다섯 가지 질문을 담은 반론 요청서를 공문 형식으로 보냈습니다. 김 여사에게 물은 질의 요지는 △4·10 총선 당시 김영선 의원과 텔레그램 교환 여부 △이 과정에서 총선 지역구 이동 언급 여부 △민간인 M 씨와의 텔레그램 대화 의혹 등입니다.
대통령실 반응은 예상대로였습니다. 묵묵부답이던 대통령실은 보도 직후 "결과적으로 공천이 안 됐는데, 무슨 공천 개입이냐"(고위 관계자)고 반박했습니다. 권력형 비리 의혹을 단순 행위로 축소하는 전형적인 '방어기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공직선거법은 결과의 실행 여부와 관계없이 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위만으로도 '추상적 위험범'으로 인정합니다. 비록 민간인 신분이지만 대통령 배우자가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는 것 또한 사실 아닌지요.
헌법재판소의 공무원 파면 기준은 높지 않습니다. 박 전 대통령도 국정농단과 당무개입 등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당무개입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 여사 문자 논란 당시 비판한 내용이 아닌지요. 지금 필요한 것은 결자해지. 그 시작은 용산 구중궁궐 타파입니다. 국민들은 뉴라이트의 가장무도회를 거부합니다. 천공 등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도 비토합니다. 보수정권의 기행 정치. 이제 끝낼 때가 됐습니다. 장두노미, 머리는 숨겨도 꼬리는 드러나는 법입니다. 윤 대통령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최신형 정치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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