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명태균의 '9월2일' 미스터리
고삐 풀린 '폭로 퍼레이드'…끝없는 '판도라 상자'
2024-10-15 06:00:00 2024-10-15 07:54:27
9월5일 <뉴스토마토>에서 보도된 "김건희 여사, 4·10 총선 공천 개입" 기사. (사진=뉴스토마토)

미스터리 인물의 악성 바이러스. 정치 협잡꾼과 선거 기술자를 넘어 비선 실세 의혹까지. 그가 내뿜는 고삐 풀린 폭로 퍼레이드. 2024년 대통령 내외를 인질 삼아 탄핵과 하야를 운운하는 정체불명의 한 인물. 지난 50여일간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명태균 게이트' 얘기입니다.
 
일개 민간인의 기이한 행적. 기고만장의 극치.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보수 정권 20여명의 목줄을 잡고 내뱉는 안하무인 언사. 그 결과는 민주공화국의 붕괴. 윤석열 대통령이 장막 뒤에 숨은 사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명태균 게이트 한 방향 '김건희'
 
끝없이 불길한 예감.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 갈래인 명태균 게이트의 종국적인 한 방향.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법적으로 공직자가 아닌 대통령 부인과 비선 실세의 공천 개입 의혹. 사태의 본질은 헌정 문란 의혹을 둘러싼 두 민간인의 몸통 여부. 
 
사태 분기점은 명태균의 입. 실제 그랬습니다. 본지가 이 사태의 취재를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23일.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뒤 전방위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내부적으로 고민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의견 대립도 있었습니다. 고민의 찰나를 불식한 것은 다름 아닌 명태균 씨의 자백.
 
사건은 이랬습니다. 본지는 지난달 5일 자를 통해 <김건희 여사, 4·10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을 처음 보도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전인 9월 2일, 본지는 '정치정책부' 명의로 대통령실에 '4·10 총선 당시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과 텔레그램 교환 여부' 등 다섯 가지 질문을 담은 반론 요청서를 공문 형식으로 전달했습니다. 김 여사에게도 제가 직접 '텔레그램·카카오톡·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를 보낸 시간은 오후 2시20(문자)∼21분(텔레그램·카카오톡). 텔레그램 메시지는 곧바로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명 씨는 당시 자신을 마크하던 본지 취재기자에게 3시10분께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내가 무슨 역술인이니 (중략) 이제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취재기자가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하니, 명 씨는 "본인 상사에게 물어봐요"라고 말했습니다. 명 씨는 이때도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박완수 경남도지사, 김영선 전 의원 등을 거론하며 "이들을 내가 도와줬다"고 했습니다. 
 
불과 50분 사이 벌어진 '미스터리'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TF를 구성한 지 10여일간 취재 과정에서 그 누구도 '역술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과 김 여사에게 각각 보낸 반론 요청서와 텔레그램·카카오톡·문자메시지만 빼고. 이유가 있었습니다. 취재 초반, 모든 가능성을 열고 명 씨의 정체성을 규정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명 도사' 등의 얘기도 나왔습니다. 
 
추가 기사에 역술인 단어를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김 여사 등에 보낸 메시지에 명 씨 직책을 '김영선 전 의원의 정책책사였던 명태균 역술인'이라고 표기했습니다. 향후 기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완충장치였습니다. 어찌 된 일이지, 명 씨는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낸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누가 명 씨에게 그것을 전달했을까요.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더는 묻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판도라 상자가 있다'고 확신, 취재 속도에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잊힐 자유'를 거부한 명 씨의 입이 취재 속도에 기름을 부은 셈입니다. 이후 취재 과정에서 '역술인 명태균'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 본지는 단 한 번도 그 직책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취재 기간 고민과 번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번 사태의 구조적 문제는 '박정희 체제'와 '87년 체제'의 그늘입니다. 권위주의 방식이 빚은 통치 불능 상태와 제왕적 대통령의 일극 체제가 맞물린 한국 현대사의 비극입니다. "나, 김 여사랑 친해." 이 한마디에 거물급 보수 정치인들이 줄줄이 인질로 잡혔습니다. 윤 대통령님, 뒷짐 진 채 비분강개로 끝낼 문제가 아닙니다. 삐뚤어진 십상시들의 비선 놀이. 사유 부재의 기행 정치. 끊이지 않는 검은 거래. 터진 둑을 막지 못하면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데드덕'(죽은 오리).
 
최신형 정치정책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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