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한국 문학사에 남을 쾌거입니다. 노벨상 위원회는 수상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은 지도 한참 됐습니다. 언제 책장을 넘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독서는 남의 일이 돼 버린 지 오래입니다.
침대에 느긋이 누워 손가락 몇 번만 두드려 주면, 유수의 명강의와 전문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책을 읽을 필요성을 느끼는 게 더 이상할 정도입니다. 되돌아보면 손으로 연필을 잡고 글씨를 써 본 적도 한참 된 듯합니다. 손으로 글을 써야 생각도 정리되는데, 몸은 이미 글 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노벨문학상과 인문학
노벨문학상은 소설가나 시인에게만 수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사를 연구한 테어도어 몸젠(1902년·독일제국)과 같은 역사학자나 앙리 베르그송(1927년·프랑스), 버트런드 러셀(1950년·영국) 등 철학자도 4명이나 받았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 수상으로 연합국의 승리를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도 수상자입니다. 처칠은 2차 대전 회고록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2016년에는 미국 가수 밥 딜런이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노벨문학상의 ‘문학’은 ‘인문학’과 다름없는 셈입니다. 단순히 시나 소설, 희곡 등 ‘글만 잘 쓴 문학’이 아닌 폭넓고 심도 깊은 인문학적 통찰이 담겨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인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입니다.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에 대립되는 영역으로,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데 반하여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합니다.(교육학용어사전·1995년 6월29일·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미 인문학의 위기를 넘어 사멸의 단계까지 가는 듯합니다. 고대신문(2024년 5월 13일 발행)에 따르면 2012년 962개였던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는 2021년 155개가 줄어 807개가 됐습니다. 덕성여대는 2025년부터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에 신입생을 배정하지 않습니다. 서울권 대학에서 첫 폐지 사례입니다.
대학 탓도 할 게 못 됩니다. 인문학 계열을 졸업하면 취직하기 어렵습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2022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졸업생 취업률은 의약계열(83.1%)과 공학계열(72.4%)이 높은 반면 인문계열(59.9%)과 사회계열(63.9%)은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인문학을 운운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치기 어린 사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배부른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인문학은 인간이 왜 인간인지를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성찰하는 학문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학문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는 문화국가가 되는 것을 소망했습니다. 한국의 K-문화가 지금 세계를 뒤흔든다 해도 뿌리가 약해지면 곧 시들고 말 겁니다.
문화국가는 인문학이 번성한 나라입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즈음해 한국 인문학에 대한 성찰도 다시 피어올랐으면 합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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