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170억, 그리고 8000원
2024-10-22 06:00:00 2024-10-22 06:00:00
부산 금정과 인천 강화, 전남 영광·곡성 등 4개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10·16 재·보궐선거가 종료된 지 일주일이 돼 갑니다. 각각 여당과 야당의 텃밭에서 진행되는 탓에 상대적으로 조용히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던 선거는 기대 이상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선거 막판 여야 지도부가 화력을 집중했던 부산 금정에서는 지난 4·10 총선에 이어 '정권 심판론'이 또 한 번 대두됐습니다. 당대표 취임 100일을 넘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는 첫 번째 심판대로 여겨졌습니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약진했던 전남 영광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처럼 각 정당에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막바지 선거 열기가 고조되던 순간, 새로운 보궐선거가 결정됐습니다. 문헌일 전 구로구청장이 스스로 직을 내던진 것입니다. 
 
발단은 문 전 구청장이 보유하고 있던 170억원 상당의 주식이었습니다. 과거 그가 구로구에 설립한 정보통신회사 '문 엔지니어링'의 주식 4만8000주를 지키기 위해 임기 절반이 남은 구청장 자리를 내려놨습니다. 
 
앞서 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지난해 3월 문 전 구청장이 소유한 문 엔지니어링 주식에 대해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서 백지신탁을 결정했고, 문 전 구청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회사가 구로구 내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게 정권을 바꿨고, 본사도 서울 금천구로 이전했다"는 옹색한 해명도 함께 내놨지요. 
 
하지만 재판부는 "구청장 업무를 통해 회사 경영이나 재산과 관련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서 1심과 2심 모두 문 전 구청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 전 구청장은 "법원의 결정은 그간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구정을 수행해 온 저로서는 매우 아쉽고 가슴 아픈 결정이다"라는 퇴임사를 남긴 채 이제는 190억여원까지 가치가 불어난 재산을 품고 떠났습니다. 
 
반면 내년 4월 새로운 구청장을 뽑아야 하는 38만여명의 구로구민들에게는 1인당 약 8000원의 새로운 빚이 생겼습니다. 보궐선거에 소요되는 비용이 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문 전 구청장이 지난 2년여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정책들도 모두 원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해당 사업들을 위해 여태까지 투입됐던 막대한 비용들이 허공에 뿌려졌지요. 구로구가 4차 산업을 선도하는 스마트 도시로 바뀌기를 희망하며 문 전 구청장을 선택했던 구로구민들은 수백억의 사익 앞에 배신을 당한 셈이고요.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합니다. 주권자들의 민의를 모아 중대한 결정을 내릴 대표자를 뽑는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적합한 자질을 갖춘 후보자를 선택해야 할 의무는 유권자에게 있지만, 그에 앞서 후보자 스스로도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합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서는 자리가 아니란 얘깁니다. 
 
이는 비단 문 전 구청장에만 한정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익이 공익에 우선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치인의 덕목을 새겨 들어야 할 사람이 누구일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겠지요.
 
김진양 정치팀장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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