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투기자본의 그늘)①PEF 20년…'산업보호'에서 '수익추구'로 변질
사모투자전문회사 제도 도입 취지 달라져
LBO 방식으로 기업 인수, 이해관계자와 충돌
2024-12-10 06:00:00 2024-12-10 06:00:00
이 기사는 2024년 12월 5일 18:21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융자본의 기업 인수는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이 발언이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유동성 확대에 힘입어 성장한 투기자본이 산업 전반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IB토마토>는 투기자본의 성장 배경과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올해로 사모투자전문회사 PEF(Private Equity Fund)가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됐다. 본래 목적은 외국자본으로부터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현재는 오히려 PEF가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입 20년 경영 전면 등장…수익실현 '초점'
 
현재 PEF의 법제상 정식 명칭은 '경영참여형 기관전용 사모펀드'다. 여기서 '경영참여형'이란 기업을 인수해 기업의 전략과 인사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관전용'은 주요 기관투자자만 출자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배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해준다.
 
PEF는 지난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개정하면서 국내에 도입됐다. 초창기 총 설정액 4000억원 규모에 2개뿐이던 PEF는 성장을 거듭해 작년 기준으로 1080개, 설정액은 약 133조9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성장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12년 유럽 금융위기 등 국내외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성장의 발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2005년부터 국민연금 보험요율이 9%로 확정되고 각종 공제회가 설립되면서 대규모 재무적 투자자(LP)로 나서게 된 점도 PEF 성장에 한몫했다.
 
국내 사모펀드는 주로 '차입매수'(LBO) 방식을 썼다. 대출을 통해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인수 후에는 대상 기업의 자산이나 현금을 사용해 부채를 상환한다.
 
마이클 병주 김 MBK파트너스 회장(사진=MBK파트너스)
 
실제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인수에서도 MBK파트너스는 6호 바이아웃 펀드를 재원으로 삼았다. 지난 11월18일 2차 클로징을 마친 해당 펀드는 국내를 비롯한 북미 지역과 중동 지역의 LP 중심으로 이뤄졌다. 2차 클로징은 미화로 50억달러 한화로 7조원을 상회하는 규모로 조성됐다. 올해 아시아 지역 바이아웃 펀드 중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 방식은 기업의 지속 운영에 있어서는 언제나 물음표다. PEF 특성상 기업 가치 증대와 수익실현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보니 기업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의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신진영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PEF가 애초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바깥 언급을 자제했던 성향이 있다"라며 "사업별 기업 노동자와 같은 이해당사자와 협의하는 것이 기업가치 증대에 큰 의미를 갖는 만큼 대외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증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다.
 
돈 빌려 기업 인수 후 되팔기…투자회수 급급
 
초창기 소규모로 시작한 국내 PEF는 LBO 방식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일정 기간 내에 수익실현이라는 과제를 부여받게 됐다.
 
하지만 이는 기업 가치 상향을 위한 투자보다는 자산매각과 임금 절감과 같은 비용 문제 개선이 주요 경영 기조로 흘러가게 했다.
 
(사진=홈플러스)
 
실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MBK파트너스에 따가운 눈총이 돌아간 가장 큰 이유는 홈플러스 자산매각 때문이다.  MBK파트너스는 2020년 이후 안산, 대구, 대전둔산 등 점포를 팔았다. 시화, 울산, 구미점의 경우 재임차했다. 올해에는 서대전점과 안양점을 매각할 예정이다. 270억원 규모다. 이 외에도 울산점, 구미광평점, 시화점 등도 매각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마련된 자금은 온전히 인수금융 상환에 활용됐다. 당시 4조3000억원에 달했던 인수금융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 장부금액 5270억원 규모로 줄었다.
 
반면 기업가치는 감소 추세다. 홈플러스의 매각예정자산 규모는 2020년 1175억원, 2021년 950억원, 2022년 434억원, 2023년 270억원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반면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944.03%에서 3211.66%로 급증했다. 부채총계가 2022년 8조2245억원에서 지난해 8조5201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자본 총계가 기존 8712억원에서 2653억원으로 급증해 약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 컬리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온라인에서 식품을 강화하면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 기업형 슈퍼마켓(SSM) 경쟁력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며 “특히 홈플러스는 사모펀드가 경영하면서 점포를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과 비용 감축에만 몰두한 결과”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경영권 넘보는 MBK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결국 새해로 넘어갔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열고 내년 1월23일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결의했다. 이번 주주총회는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경영권 분쟁 이후 첫 주주총회다. 업계에선 양측 표대결을 통해 경영권 분쟁의 첫 승패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현재 영풍·MBK와 최 회장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9.83%와 17.18%다. 고려아연의 현 경영권을 쥔 최윤범 회장은 우호세력 지분을 모두 더해도 34% 정도로 불리하다. 한국투자증권(0.8%)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161390)지(0.7%),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0.7%) 등이 연이어 보유 지분을 매각하면서 더욱 불리해졌다.
 
캐스팅보트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9월 말 기준 고려아연 지분 7.48%를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측에 선다면 결과는 뒤집힌다. 반면 경영권 분쟁 중인 한미사이언스 때처럼 '중립'을 택할 경우 무게 추는 MBK·연합 쪽으로 기울어진다. 
 
시장에서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당분간은 어느 한쪽의 우세를 점하지 못하게 하는 정도 선에서 국민연금이 표를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하지만 추후 고려아연이란 국가 주요 기업의 운영 결과에 따라 국민연금이 마음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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