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무산에 따른 후폭풍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규제와 기업 옥죄기로 험난했는데, 탄핵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불확실성 장기화 속 산업 진흥 정책의 실종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특히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글로벌 패권 경쟁이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는데요. 정치 불확실성으로 당분간 정부의 기업 지원책 확대가 어려운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윤석열정부의 ICT 산업 정책에 대해 "규제만 가득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가계통신비 인하는 역대 정부가 민생정책 차원에서 강조했던 공약이자 정책임에도 이번 정부에서 유독 힘들었다는 것이 통신업계 설명입니다. 플랫폼 업계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옵니다. 정부가 플랫폼 자율규제를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정작 현실에선 규제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침체기에 놓였다고 아우성입니다.
6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통사 요금 내렸지만 통신비 인하 효과 없어…손에 쥔 것은 과징금
사실 윤정부 임기 초반만 해도 기업들은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자율 경쟁을 강조한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해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취임 1주년 당시에도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를 강조했죠. 하지만 지난해 초 국내 통신사를 이권 카르텔로 지목하며 통신비 인하 압박이 본격화됐습니다.
서울시 중구의 한 휴대폰 대리점에서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고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실제로 5G 요금 인하를 위해 중간요금제를 신설하도록 하는 데 그치지 않고, 30~110GB 구간의 5G 중간요금제도 추가하도록 했습니다. 청년과 노년층 특화 요금도 주문했습니다. 4만원대 중후반이던
SK텔레콤(017670)·
KT(030200)·
LG유플러스(032640) 등 통신3사의 5G 요금제 최저 구간은 3만원대로 낮췄습니다. 다만 이같은 요금제 확대가 통신비 인하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통신비는 12만5000원입니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했던 2022년 2분기 12만3000원 대비 오히려 1.6% 늘었습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투자도 하고,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 통신비 부담 완화방안 등 정부 정책에 맞춰왔지만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만 손에 남았다"는 자조적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5G 서비스 최대 속도를 실제로 소비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했다며 통신3사에 336억원 규모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계기로 통신3사가 담합 행위를 하며 시장 경쟁을 제한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조단위 과징금도 예고한 상황입니다.
네이버·카카오 겨눈 칼날…플랫폼 규제 기조 확대
플랫폼 업계도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네이버(
NAVER(035420))와
카카오(035720) 주가가 이를 극명하게 설명해주는데요.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 대비 네이버 주가는 지난 6일 기준 25.9% 떨어졌고, 카카오는 46.7% 급락했습니다. 네이버는 정치권의 뉴스 편향성 문제 제기에 알고리즘을 공개하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에스엠(041510) 인수 과정에서 주가 조작 의혹을 받은 카카오는 김범수 창업주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되는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배차 알고리즘 조작, 매출 부풀리기 의혹 등으로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개별이슈에 대한 지적뿐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 전반에 대한 규제 기조도 이어져 왔습니다. 공정위는 지난해 1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제정해 시행했습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는 독과점 남용행위 심사기준을 구체화 한 것이죠. 올해는 시장지배적 플랫폼을 지정하고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도 추진했습니다. 업계와 학계 반발로 법 제정은 무산됐지만 공정위는 현행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이어가겠단 방침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법 위반 시 임시중지명령을 내리고, 관련 매출액의 8%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골자입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디지털경제연구원은 '조급한 규제의 딜레마' 이슈페이퍼에서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업종과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는데, 규제 정책은 이러한 시장별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획일화된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규제를 국내외 기업에 동등하게 적용하겠다는 포부를 내놓고 있지만, 결국 국내 플랫폼만 위축될 수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SK텔레콤 에이닷 서비스 부스. (사진=뉴스토마토)
탄핵정국…산업 진흥책, 정치 이슈에 뭍히나
윤정부의 임기 전반기 유례없는 규제에 갇혔던 국내 ICT업계는 탄핵 정국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2년여 넘게 실종됐던 산업 진흥 정책이 앞으로도 나오기 쉽지 않은 환경에 직면한 까닭입니다.
특히 국내 ICT업계가 정조준하고 있는 AI는 국가 지원이 필수적인 산업인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입니다. AI칩과 데이터센터, AI모델 개발, 초거대언어모델(LLM)을 활용하는 앱 등에 대한 지원책 없이 AI 산업을 키우는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대규모 투자 위에 사업자들의 투자가 더해져야 AI 산업이 꽃을 피울 수 있다"며 "탄핵정국으로 산업 이슈는 뒤로 밀리다 보면 기업들의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ICT 산업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당장 AI기본법 통과도 어려울 수 있고, 산업 지원책은 정치 이슈에 함몰될 수 있다"며 "내부 정치 리스크로 AI G3 목표 달성은 물론, 기존 경쟁력이 뒤처질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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