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탄식·분노로 뒤덮인 여의도…'촛불'은 계속된다
주최측 추산 100만명 집결…탄핵 무산되자 탄식·분노
"윤석열을 탄핵하라", "내란동조 국힘해체" 한목소리
2024-12-08 10:17:16 2024-12-08 10:17:16
[뉴스토마토 신태현·차종관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위해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의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탄핵 표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위헌적인 계엄령을 내려 국회를 장악하려 했던 내란 수괴를 내쫓지 못한 겁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졌다", "국민의힘 해체하라"며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7일 '범국민촛불대행진'이 열릴 예정인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집회가 열리기 한참 전임에도 변호사회·여성단체·대학생 등 다양한 주체가 사전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사IN>·<한겨레> 등 일부 언론은 국회의사당역 출구와 인근 골목에서 길을 거니는 시민들에게 특별판을 나눠줬습니다. <한겨레> 지면에는 '내란범 윤석열'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있었습니다. 
 
7일 '범국민촛불대행진'이 열린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의 모습. 순서대로 무대, 집회 대오, <한겨레> 호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뉴스토마토)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대오를 형성한 시민들은 차분하게 자리에 착석했습니다. 한 시민은 곁에 있는 다른 시민에게 자연스레 말을 걸었습니다. "어디서 오셨냐", "춥진 않으시냐"와 같은 안부인사가 오간 뒤 "탄핵될 거 같냐",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거다" 등 본격적인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의 물리적 충돌을 우려한 시민은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몸으로 막자. 계엄령 때도 시민들이 계엄군의 장갑차를 몸으로 막았다"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옆에 앉아 인사를 건네온 시민 김모씨는 기자가 <뉴스토마토> 소속임을 알고 매우 반겼습니다. 그는 "'명태균 게이트' 보도를 아주 잘 보고 있다"며 "2년반 만에 나라가 이렇게 망할 줄은 몰랐다. 이제는 윤석열을 해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민들이 국회를 배경으로 집회 참여 인증사진을 남기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집회가 열릴 시간이 다가오자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인파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9호선 지하철이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을 무정차 통과한다는 문자 메시지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회대로와 의사당대로 모두 인파의 끝과 끝이 어디인지 도저히 가늠이 불가할 정도로 시민으로 가득 찼습니다. 
 
무대에서는 다양한 주체들의 발언뿐 아니라 다채로운 공연도 진행됐습니다. 먼저 뮤지컬 배우들이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열창했습니다. 인디 밴드가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편곡해 부를 땐 대학 축제를 연상케 하는 떼창이 이어졌습니다. 시민들은 '아모르파티' 노래에 맞춰 "퇴진 퇴진 퇴진해"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K-POP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온 시민들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K-POP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온 시민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들의 응원봉은 각기 다른 형태와 색을 띠어 휘황찬란하게 빛났습니다. 록 페스티벌에나 등장할 법한 유머 넘치는 깃발들도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줘라, 우리가 집에서 나와서 일어나야겠냐'라고 적힌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의 깃발은 단연 독보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전국쿼카보호협회', '지속가능한 덕-질', '가난하고 골병든 예술인 연합', '당근을 흔드는 사람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연맹', '강아지발냄새연구회' 등이 현장에 웃음을 더했습니다. 한 시민은 "과거에 비해 집회가 젊어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국회대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시민들로 가득 찬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탄핵 표결 시간이 가까워지자 현장의 긴장감도 고조됐습니다. <JTBC> 뉴스가 현장 스크린에 중계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며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김건희 특검법에만 표결하고,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엔 불참한 채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이 중계되자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야유했습니다. 김건희 특검법 개표가 시작되자 시민들 사이에선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해가 지고 아스팔트 바닥은 한층 더 차가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두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후 5시40분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표결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부결이었습니다. 실망이 가득한 탄식이 곳곳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시민들이 "윤석열을 탄핵하라"를 외치고 있는 모습. 일부는 휴대전화로 생방송 뉴스를 시청하기도 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제 윤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할 차례가 왔지만, 본회의장을 비추는 카메라엔 국민의힘의 텅 빈 의석만 보였습니다. 당시까지 착석한 국민의힘 의원은 안철수 의원이 유일했습니다. 이를 본 시민들은 "표결에 동참하라"고 외쳤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표결 참여를 촉구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은 "돌아와"를 목놓아 외쳤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 의장은 밤 9시20분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복귀하는 걸 더는 기다리지 않고, 표결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결과는 부결이었습니다. 결국 투표는 성립되지 못했습니다. 위헌적인 계엄령을 내려 국회를 장악하려 했던 내란 수괴를 내쫓지 못한 겁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끊임없이 "국민의힘 해체하라"를 연호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얼굴이 잠깐씩 현장 스크린에 나오자 사방에서 "꺼져"와 같은 절규와 비명도 울렸습니다. 현장에서 <뉴스토마토>를 만난 장정희 마포구의원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는 "이런 식이면 시민들이 무력감에 빠진다. 정치에 효능감을 잃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집회 현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맥없이 울려 퍼지는 동안, 시민들은 욕설과 함께 점차 현장을 이탈했습니다. 무력감과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 채 아스팔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한 시민은 "이제 모르겠다. 윤석열이 계속 대통령 하는 거냐. 범죄자인데…"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또 다른 시민은 "민주주의가 졌다. 대의 민주주의가 실패했다"고 되뇌었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한 청소년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럴 순 없다. 위헌적 계엄령을 내린 내란 범죄자도 탄핵 못 시키면 어쩌자는 거냐. 분명 총과 장갑차로 국회를 공격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무력감과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 그럼에도 시민들은 마음을 추스르며 집회 장소 주변 쓰레기를 자진해서 치웠습니다. 질서 있게 귀가하는 길에도 시민들은 "탄핵해"를 연호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탄핵될 때까지 (집회에) 나올 거야"라는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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