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에 따른 탄핵 표결이 여당의 비토로 무산되자 정국이 격랑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탄핵을 향한 국민적 목소리와 함께 이를 관철시키려는 야당과 막으려는 여당 사이 정쟁으로 정국 혼란만 더 연장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는 사이 지상파 재허가 심사 마감 시한이 다가오고 정책의 불확실성만 이어지는 등 방송의 정상화는 더욱 요원해진 상황이 됐습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을 거부한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본회의에 상정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은 끝내 부결됐습니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만 표결에 참여했기 때문인데요.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 등 야당 의원 191명, 안철수·김예지·김상욱 등 여당 의원 3명만 표결에 참여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105명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요. 결국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의결 정족수가 5명 부족해 개표도 하지 못한 채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됐습니다.
윤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 여당은 ‘질서 있는 조기퇴진’을 주장하고 있고, 야당은 ‘매주 탄핵안 발의’를 예고한 상태인데요. 올해가 채 한달이 남지 않은 현재 정국은 정쟁의 소용돌이로 또 한 번 빠져들고 있습니다.
정국 혼란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나라 방송 정책의 정상화도 요원해졌습니다. 그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장악 의심 속에서 ‘대통령 추천 몫 2인’으로만 위원회를 구성하고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의결을 강행해 논란이 돼 왔는데요. 야당과 시민사회의 강력 반발 속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등 3명의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되는 등 부침을 겪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는 초유의 ‘0인 체제’ 상황도 겪는 등 의결을 하지 못하는 식물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통위 파행을 두고 여당은 야당이 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은 탓이라고 책임을 돌려왔는데요. 실상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안형환 전 부위원장 후임으로 민주당이 추천한 최민희 후보 임명을 거부하면서 파행이 촉발됐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사진=뉴시스)
그나마 최근 들어 민주당이 자당 몫 방통위원 추천 방침을 밝히면서 방통위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었습니다. 여야 논의를 거쳐 야당 추천 몫 위원 2명과 여당 몫 1명이 함께 임명된다면 현재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대통령 추천)과 함께 2대2 구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도 방통위 회의 소집과 의결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기습 비상계엄이라는 친위 쿠데타는 탄핵 부메랑으로 정국을 집어 삼켜 방통위 정상화는 더욱 멀어지게 됐습니다. 여야가 탄핵을 둘러싸고 각각 ‘가결’과 ‘반대’의 단일 대오를 형성하며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방통위원 추천 절차의 진행 여부도 불투명합니다.
현재 방통위는 현안이 가득 쌓여 있는 상태인데요.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는 연내 마감 시한을 앞두고 있는 MBC DTV(본방송), KBS 1TV, EBS, TBS 등 총 12개 방송사업자 146개 방송국에 대한 재허가 심사를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구글·애플 인앱결제 과징금 부과와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 실태조사 결과 발표 등도 주요 현안으로 꼽힙니다. 특히 지상파 재허가 사안의 경우에는 지난해 ‘물리적 시간 부족’을 이유로 의결이 보류되는 촌극도 빚은 바 있는데요. 당시 KBS 2TV, MBC·SBS UHD 등 34개 지상파방송사 141개 방송국의 허가가 늦어져 ‘무허가’로 방송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 표결을 위해 자리에서 이동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투표를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표결을 앞두고 대부분 퇴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여당이 연장시킨 ‘정권 수명’…공영방송 정상화는 언제쯤
여당의 비토로 인한 윤 대통령의 탄핵 표결 무산은 결국 현 정부의 수명을 연장시킨 셈이 됐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현 정부의 ‘방송 장악’에 반발하던 움직임은 더욱 견고해지며 탄핵에 반대한 국민의힘을 향한 비판으로 옮겨 붙는 모습입니다. 특히 사장 선임 과정에서 대통령실 개입 정황 등이 드러난 KBS의 경우에는 ‘보도 참사’에 대한 비판도 잇따릅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현업 단체는 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이후 긴급 성명을 내고 즉각 퇴진의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국민의힘이 탄핵 무산에 힘을 보태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도 탄핵 찬성표를 던졌던 보수정당이 불법계엄으로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으려 했던 내란 수괴 윤석열을 끝내 비호하는 세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라며 “내란 동조 국민의힘을 해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현 정권의 공영방송 이사진 개편으로 ‘방송 장악’ 의혹 중심에 서 있는 KBS의 경우에는 ‘보도 참사’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비상계엄이 선포된 초유의 상황에서 지상파와 종편 등 보도채널들이 비상 체제로 전환하고 뉴스특보를 방송했지만, KBS는 기존에 편성된 방송을 이어가는 등 대응이 미진했기 때문입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성명을 통해 “내란 주범 윤석열에 부역한 자들 당장 KBS를 떠나라”며“비상계엄 특보 역시 보도 참사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KBS본부는 신속한 특보 체제를 가동하지 않아 한참동안 ‘시사기획 창’이 방송된 점, 타사가 국회 앞 현장 상황을 재빠르게 확보해 실시간으로 보여줄 때도 대통령 담화와 의미 없는 해설로 시간을 보낸 점, 야당 대표와 국회의원들의 기자회견을 뒤늦게 방송하고 여야 균형을 맞춘다는 형식 논리로 ‘비상계엄의 원인은 야당에 있다’는 여당 인사의 발언을 버젓이 방송한 점 등을 지적했는데요.
그러면서 “박민 사장, 박장범 사장 후보자, 장한식 보도본부장, 최재현 보도국장, 김성진 주간은 의도적으로 윤석열, 김건희, 명태균 관련 의혹에 눈감았다”라며 “10년 동안 KBS 구성원들이 가까스로 회복해 낸 KBS의 위상을 박민과 부역자들은 불과 1년 만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또다시 KBS는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됐고 정권 앞에만 꼬리치는 애완견이 됐다”라고 직격했습니다.
이번 KBS 보도 참사 사태는 국회에서도 다뤄집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3일 긴급 현안 질의를 개최하기로 했는데요. 박민 KBS 사장, 박장범 사장 후보자 등 총 14명의 증·참고인이 채택됐습니다.
방통위원을 지낸 고삼석 동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년 반 동안 윤석열정부의 난맥상이 결국은 방통위와 공영방송 시스템에 그대로 반영이 됐다”라며 “정말 비정상의 극치”라고 지적했는데요. 그러면서 “비정상적이었던 국정을 어떻게 정상화해 낼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방통위와 공영방송도 정상화 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탄핵안 표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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