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한동인·차철우 기자]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물결은 결국 여권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인데요. 윤 대통령 탄핵안이 과거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 달리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①여당 주류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실질적으로 여권 내 이탈 규모인데요. 당시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비주류 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비박(비박근혜)계가 중심이 돼 일찌감치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이 주효했는데요.
당시 탄핵안 가결정족수인 200표를 위해서는 여권에서 최소 28명의 찬성표가 필요했는데, 비박계에서 표결 직전 '찬성표 33명'을 공언하며 탄핵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결국 여권에서 총 62명이 찬성표를 던졌는데요.
반면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친한(친한동훈)계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조경태 의원의 경우, 찬성 의사를 밝혔지만, 이후 한동훈 대표의 뜻에 따르겠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습니다. 이후 여러 친한계 의원들이 입장이 반대로 급격히 쏠렸습니다.
②임기
'잔여 임기'에서도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부각된 건 임기 5년 차를 앞둔 2016년 10월이었습니다. 그해 12월 박 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따라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퇴진했습니다. 잔여 임기를 약 1년 남기고 탄핵된 겁니다.
임기 말 박 전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던 셈입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임기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권력이 '정점'에 달해야 할 시기인데요.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권력 상실)을 자초했습니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은 탄핵 국면 대국민 담화에서 자신의 임기 문제를 국회에 일임했는데요.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임기 문제를 당에 일임했습니다.
③탄핵 트라우마
헌정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지난 7일 국민의힘이 보이콧해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됐습니다. 국민의힘의 표결 불참 배경에는 '탄핵 트라우마'가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새누리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비주류 세력의 탄핵 동조로 보수 진영의 분열을 야기했습니다. 고조된 탄핵 여론으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거듭됐고, 여권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는데요. 결국 새누리당은 탄핵 여론에 동참해 민심을 따라야 한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적어도 민심의 공포를 알았던 셈입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지난 7일 동참하지 않았던 이유는 보수의 궤멸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합니다. 또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민주당에 정권을 헌납하는 걸 용납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보수 진영 사이에서는 이런 행동이 윤 대통령과 함께 자멸의 길을 택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④배신자 프레임
이번 사태에서 국민의힘에서는 용기를 낸 의원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탄핵안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뿐입니다. 이 중 김예지 의원이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고 밝혔는데요. 안철수 의원도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탄핵에 찬성하면 '내가 제2의 유승민'이 될 수 있다는 학습이 이미 돼 있습니다. 앞서 유승민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의원들의 동참을 설득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는데요. 8년이 지난 지금도 유 전 의원은 자당의 대통령을 탄핵시킨 주동자라는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정치 생명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는데요. 국민의힘 소속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런 점 때문에 '유승민의 길'을 택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당의 배신자보다는 '내란 동조자'가 된 셈입니다.
박주용·한동인·차철우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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