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세웅 기자] 대법원이 재직조건, 근무일수 조건이 붙은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11년 전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앞으로는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이라면 모두 통상임금에 해당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5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이혼한 부부에게 혼인무효 처분을 인정하지 않는 혼인무효소송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사진=뉴시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9일 오후 한화생명보험과 현대자동차 전·현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의 상소심을 선고하며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볼 근거가 없다며 고정성 기준을 폐지했습니다.
그동안 판례에 따르면 노동자가 받는 각종 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할지 여부는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기준으로 판단해 왔습니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면 그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고정성 기준은 통상임금 산정에 타당한 기준이 아니기에 법령상 근거가 없음에도 이를 통상임금의 개념 징표로 요구하는 것은 통상임금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한다고”도 했습니다.
지급일 기준 재직자일 것을 요구하는 정기 상여금에 관해서는 "근로자가 재직하는 것은 소정 근로를 제공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라며 "재직 조건이 부가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소정 근로 대가성이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특정 일수 이상 근무를 요구하는 정기 상여금에 대해서도 "소정 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소정근로일수 이내의 근무 일수 조건이 부가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그 임금의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특정한 조건을 만족할 때만 정기 상여금을 주는 규정을 회사가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해당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할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나오는 통상임금 개념은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을 의미합니다. 통상임금은 연장, 야간, 휴일근로수당, 휴업수당, 연차수당에 영향을 미칩니다.
재계는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사 합의로 결정한 사항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바꿔버리면 사법부에 대한 노사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며 ”이번 판결로 수혜대상이 대기업에 쏠리는 만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 심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통상임금 판결로 지급능력이 부족한 기업들도 많을 것이라 기업 경영에도 어려움이 따를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판결로 인해 전체 기업 중 4분의1 이상이 상여금 기준을 바꿔야 하는 등 기업 경영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낸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시 경제적 비용과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지급하며 통상임금에 산입하지 않는 기업은 전체 기업 중 26.7%로 추정됩니다. 경총은 재직자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되면 연간 6조7899억원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하고, 추가 지급돼야 하는 임금 총액 중 47.7%에 해당하는 연간 3조2391억원이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에게 귀속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반면 노동계는 환영과 함께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사건에서 노동자측 대리를 맡은 김기덕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대법원이 11년 만에 통상임금에서 고정성 기준을 제외한 건 노동자의 임금 권리를 진작시키는 의미있는 판결"이라면서도 "마치 새로운 입법을 하는 것처럼 기존에 있던 사건들은 적용하지 않고, 향후에만 적용해 주겠다고 판결한 건 아쉽다"고 했습니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통상임금에 대한 복잡성과 혼란을 가져온 현실을 바로잡는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했습니다.
임세웅 기자 sw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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