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대거 임기 만료를 앞둔 주요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 변화 여부는 탄핵정국 속 금융당국의 위상을 가늠할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국내 4대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 74% 가량이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임기가 끝나는데요. 당국은 횡령·부당대출 등 내부통제 문제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사회의 감시 역할 강화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참호 구축 성격의 이사회 구성에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앞 모습. (사진=뉴시스)
사외이사 31명 중 23명 임기 만료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1명 가운데 올 초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는 23명으로 비중은 74%에 달합니다. KB금융 6명, 신한금융 7명 , 하나금융 5명, 우리금융 5명입니다.
통상적으로 금융지주는 정관과 내부규범 등을 통해 사외이사의 최대 재임 기간을 6년(KB금융의 경우 5년)으로 제한해놓고 있습니다.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가운데 5명은 최대 재임기간을 모두 채웠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교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다른 이사들의 거취가 주목됩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을 경우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재임 기간을 모두 채웠습니다. 현 회장 취임 이후 선임된 사외이사들로 이뤄진 만큼 교체 이슈가 적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임기 중반을 지나는 금융지주 회장 입장에서도 중요한 시기입니다. 안정적인 경영체계를 구축하고 향후 거취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본인 재임 시 선임한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친정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사외이사 평가 강화 등 이사진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이사진 변화의 폭이 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지난해부터 시행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 핵심 사안 중 하나는 사외이사제도 손질입니다. 금감원은 사외이사에 대한 적정 임기정책과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획일적인 '2+1년' 임기 정책을 새로 정비해 사외이사 임기만료가 특정 시기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전문성·다양성 목표를 반영해 주기적인 이사회 내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임기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금감원은 사외이사 등 이사회 역량 구성표(BSM)를 작성해 이사진 후보군 관리 및 신규 이사 선임에 활용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사회 구성원의 전문성, 능력, 경험, 자질뿐만 아니라 성별, 연령, 사회적 배경 등 다양성 정보를 표나 그림 등으로 도식화하고, 이사회의 구성이 적절한지 평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금융권은 당국의 칼끝이 지배구조 핵심축인 이사회로 향한다고 보고 긴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금융의 경우 전임 회장 친인천 부당대출 사태로 인해 경영진을 비롯해 이사회의 책임론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사진 역시 내부통제 미비 등 일련의 책임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요. 우리금융의 경영진들이 조직 쇄신 차원에서 물갈이 된 가운데 내부통제 문제에 대한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이들이 연임을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주요 금융지주사 이사회 의장에 "경영진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사회가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월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에 이복현 원장이 참석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내부통제 이슈가 별로 없는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4대 금융은 신규 사외이사에 여성 후보를 대거 추천하고 이사회 인원을 늘렸습니다. 금감원이 지난 2023년 말 은행지주 및 은행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통해 사외이사의 성 다양성, 인원 수 등에서 선진국보다 미흡하다고 지적한 점을 반영한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금융지주들이 올해 여성 이사 후보를 늘리고 전체 이사회 인원 수 확대도 추진했지만 교체 폭을 최소화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사외이사진 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현직 교수 등 학계 출신 비중이 여전히 높고 새로 추천한 여성 사외이사 대부분이 교수입니다.
그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 CEO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이사회 운영 행태를 지적해왔습니다. 이 원장은 지난해 말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만나 "금융지주 회장이 책임의식을 갖고 총괄책임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사회에서 적극적인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비상계엄사태에 이어 탄핵정국으로 흐르면서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레임덕'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봤지만, 이 원장은 오히려 금감원장으로서 역할에 고삐를 죄고 있습니다. 일단 금감원이 지주사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압박을 계속 가하는 만큼 이를 무시하고 사외이사를 선임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는 만큼, 연임이 예상됐던 이 원장의 임기는 예상보다 단축될 가능성이 커 금융지주들이 버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지배구조 모범 규준 가운데 형식적인 절차 외에 사외이사 자격 기준과 평가 등을 실질적으로 금융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는 점 역시 이사진 유지에 힘을 싣습니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사외이사 절반 이상이 임기가 끝나지만 지난해 선임 후 첫 임기를 마친 사례가 많기 때문에 당장 교체 이슈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당국의 지적사항을 반영해 소폭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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