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위원회가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지만 금융권 반응은 냉랭합니다. 수년 전부터 금융 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비금융사 지분 제한 완화를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의 계획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을 위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탄핵 정국으로 불안한 시기라 올해도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번엔 지주사 지분 제한 완화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대통령 권한대행 업무보고에서 '경제 리스크 관리 및 경제활력 제고'를 주제로 시장 안정과 민생 회복, 혁신 금융을 3대 핵심목표로 제시하면서 올해 추진할 9대 정책과제를 보고했습니다. 다만 이미 추진하고 있거나 올해 계획됐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오는 7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 재발방지책 마련, 정책금융과 서민금융 공급 확대 등이 그렇습니다. 금융산업 발전책이 전무한 가운데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금융지주사 제도 개선'입니다.
금융위는 혁신금융 정책 추진 계획으로는 금융지주사의 핀테크 출자 제한을 기존 5%에서 15%로 완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다만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금산부리 규제 완화는 답보상태에 있습니다.
금융위는 2023년 8월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좌초한 바 있습니다. 현재도 여소야대 국면이 여전한 데다 탄핵정국으로 불안정한 시기인데 금산분리 안을 다시 꺼낸 것입니다.
금융위원회가 2025년 업무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미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대다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현행 금융업권법상 금융지주사는 비금융 회사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고, 은행과 보험사는 다른 회사 지분에 15% 넘게 출자할 수 없습니다. 그간 금융지주사들은 은행, 보험사에 준해 지주사 투자 범위를 늘려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금융위는 관련 법안 및 시행령 개정을 오는 6월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탄핵정국에 이어 조기 대선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국 불안이 아니더라도 22대 국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금산분리 완화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강령에는 '금산분리 원칙을 견지해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키고 경제적 피해는 억제시킨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당국이 금융지주사 등 은행권을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이런 상황을 타개할 리는 만무하다는 게 업계 중론인데요. 금산분리 완화를 완주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사법 개정을 오는 6월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탄핵 정국이 이어지고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비이자이익 확대 요원
이미 금융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된 곳들도금융지주회사법에서 출자가 허용되는 범위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 않아 손자회사를 세우는 등 신사업 진출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핀테크가 금융지주나 금융사에 편입된 이후에도 적자 실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금융그룹의 자산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권은 '역대급' 이자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이자이익을 늘리면 이자장사한다는 비판을 받고, 비이자이익을 늘리자니 각종 장애물이 있어서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비이자이익을 늘리고자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당장 금융당국은 약정된 대출 만기보다 일찍 상환할 때 금융회사가 차주에게 부과하는 중도상환수수료를 절반 수준으로 내리기로 했습니다. 대출 취급에 따라 실제 발생하는 필수적 비용만 반영토록 하면서 대표적인 비이자이익인 수수료 수입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쟁점이 큰 금산분리 규제 완화보다는 기존 금융권에서 건의한 규제 완화부터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자이익이 부득이 하게 많이 나오다보니까 비금융 진출 허용에 대해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을 사실"이라면서도 "고령화 이슈에 대응해 신탁업 허용을 통해 관련 사업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사 제도 개선 등을 담은 2025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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