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시가총액의 6000억원 이상을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는
신영증권(00172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수의 기업들이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자사주 소각이나 현금배당 등 정부의 밸류업에 동참하고 있지만 신영증권만은 '요지부동'입니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에 사용한다면 주주 가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영증권의 자사주 비중은 전체 주식 수의 53.1%입니다. 이는 증권업계 가운데서 1위이면서도 상장사 중에서도 높은 수준에 속합니다. 지난해 4월 전환우선주(700만여주)가 전환청구기간 종료로 보통주로 전환되면서 회사는 전체 발행 주식수(1644만주)의 53.1%에 해당하는 873만7232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사주는 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재취득해 보관하는 주식(금고주·Treasury stock)을 일컫습니다. 자사주 취득·소각은 기업의 이익을 주주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회사가 매입한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소각하지 않는 자사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4년 주권상장법인의 자사주 취득·소각 금액은 전년 대비 각각 약 2.3배, 2.9배 증가했습니다. 이는 최근 7년간 최대 규모입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신영증권은 소각 없이 자사주를 쌓아왔습니다. 업계에서는 2세 승계 작업에서 이같은 자사주가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영증권과 같이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회사가 인적분할·지주회사 전환 시, 주식교환 등을 통해 대주주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회사의 자사주를 활용해서 지분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특히 신영증권은 창업주인 원국희 명예회장이 10.42%, 아들인 원종석 회장이 7.96%를 보유하고 있어 대주주일가의 지분율은 현저히 낮은 상황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경영권 승계 와 유지를 위해 시가총액의 절반인 6000억원을 회사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6000억원을 회사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 투자하면 신영증권은 회사와 주주 가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영증권이 밸류업 공시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기대감을 반영하듯 신영증권의 주가는 지난해 27%가량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비중을 낮추는 등의 저평가 상태를 해소하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상황에서도 현재까지 신영증권은 밸류업 공시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의 밸류업에 발맞춰 자사주 매입 소각 등 주주환원 계획을 내놓는
미래에셋증권(006800)이나
메리츠금융지주(138040),
키움증권(039490) 등과도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이에 따라 신영증권의 자사주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인적분할·합병 시 자사주 신주 배정 제한' 등 자사주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53%에 달하는 자사주를 신영증권 지주사 전환에 이용하기에도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됐습니다. 일부 일반 주주들 사이에서는 "신영증권은 자사주 비율이 50% 넘는다"면서 "개인투자자에게 어떠한 혜택을 줄까"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박동빈 한국ESG기준원 연구원은 '자기주식의 매입 및 소각' 리포트를 통해 "자기주식의 재출회로 인해 기존 주주의 주식 가치 희석 가능성, 그리고 자기주식이 경영권 방어 수단, 편법적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남용될 가능성 등을 방지하기 위해 자기주식의 소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결정은 기업의 자유이지만 신영증권의 자사주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자사주를 성과급 등으로 활용할 수 있어 보유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이를 활용할 때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신영증권은 배당금 지급 등 주주 가치 제고에 힘써왔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밸류업 공시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신영증권은 항상 주주 가치제고에 앞장서 왔다"면서 "자사주 소각은 결국 주주 가치 제고와 연결되는 것으로, 자사주 소각 외에도 주주가치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의도에 위치한 신영증권 본사. (사진=뉴스토마토)
이보라 기자 bora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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