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권력형 성범죄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피해자 김지은씨에게 8000만원가량을 배상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2차 가해에 대한 안 전 지사의 배상 책임을 좁게 인정해 ‘성폭력 피해자의 말하기’를 위축시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여성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해 온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22년 8월 오전 경기도 여주교도소에서 3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하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018년 4월 피감독자 간음 및 강제추행,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됐고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아 복역해왔다. (사진=뉴시스)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판사 배용준, 견종철, 최현종)는 12일 김씨가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에서 안 전 지사가 김씨에게 8304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이 중 일부는 충청남도와 공동배상하도록 했습니다. 원심이 인정한 금액(8347만원)에서 지연손해금 등만 고려해 사실상 양측 항소가 모두 기각된 셈입니다.
항소심 선고까지 무려 5년이 걸렸습니다. 안 전 지사 측의 ‘피해자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안 전 지사가 피감독자간음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받은 뒤인 2020년 7월 안 전 지사 등에게 3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돼 민사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1심은 지난해 5월에서야 종료됐습니다. 안 전 지사 측이 대법원 선고를 부정하며 김씨에 대한 신체·정신감정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이 2년 넘게 진행됐습니다. 안 전 지사 측은 2심에서도 재감정을 신청했으나 기각됐습니다.
1심 재판부가 인정한 배상금액은 청구액인 3억원의 3분의 1도 안 됐습니다. 지속적이지 않은 강제추행 손해배상액이 통상 5000만원 수준인데, 10차례의 성폭력 범죄를 고려하면 지나치게 적은 액수라는 평가입니다. 특히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2차 가해 책임을 좁게 인정했습니다. 김씨의 신상과 얼굴이 공개되면서 쏟아진 2차 가해, 안 전 지사 측근과 지지자들의 2차 가해에 대해 안 전 지사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심 재판부도 원심과 같은 금액만 인정했습니다.
김씨 측은 법원이 기계적 판단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씨를 대리한 박원경 변호사는 “불법행위에 2차 가해까지 고려하면 너무 부족한 금액”이라며 “법원에서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사건 손해배상을 판단한 예가 없어 상한 기준을 정하고 그에 맞춰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씨 측은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앞으로 어떤 피해자가 어려움을 감수하고 말하기에 나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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