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 격화에 민감국가 지정까지…K반도체 복합 위기
대중 반도체 수출액 2~30% 하락
중국 EUV·GAA 자체 기술 개발
"기술 우위 거점, 자체 OS개발 필요"
2025-03-18 17:36:36 2025-03-19 16:24:44
 
[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로 올해 1~2월 대중 반도체 수출액이 지난해 대비 20~30% 줄어든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품목 관세와 상호관세가 내달 초 시행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복합 위기에 빠진 형국입니다. 동시에 첨단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장비들을 중국이 자체 생산하는 등 중국의 기술 굴기가 우후죽순 뻗치고 있어 반도체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악재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제조시설을 세우면 미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했던 칩스법도 폐지 기로에 놓였고, 한국이 미국의 ‘민감국가’로 지정되면서 국가 안보 관련 기술 공유가 제한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핵심은 역시 ‘기술’이라며 격차를 벌일 수 있는 거점을 만들고, 자체 운영체제(OS) 개발을 통해 수율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나노 코리아 2024에 전시된 웨이퍼(사진=뉴시스)
 
1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중 반도체 수출액 39억8000만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58억4000만달러였던 지난해 2월 대비 31.8% 급감한 수치입니다. 지난 1월 대중 반도체 수출액도 지난해 대비 22.5%(55억8000억→43억3000만달러) 줄어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 규제에 여파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난해 12월2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는 2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2 이상 제품을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올해 1월1일부터 발효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1월15일에는 14~16나노 이하 공정으로 생산된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하려면 상무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를 발표했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으로 향후 무역 환경 악화가 가속화할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외신에 따르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자체 개발에 성공한 중국 화웨이는 내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3분기 시험 생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베이징대 연구팀이 개발한 2D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게재됐습니다.
 
7나노(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 최첨단 칩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장비인 EUV는 그간 네덜란드 장비회사인 ASML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해 EUV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억제해 왔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구세대 버전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사용하며 레거시 공정에 집중해 왔습니다.
 
만약 중국이 EUV와 GAA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수율과 생산성, 성능 등을 끌어내며 첨단 반도체 자립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통틀어 50%가 넘는 만큼 업계는 비상입니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 비중은 전체(188조7544억원) 대비 중국이 34.4%(64조9275억원)로 1위, 미국이 32.5%(61조3533억원)로 2위입니다. 삼성의 중국 매출 대부분은 반도체가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3분기(누적) 기준 수출 비중은 전체 매출(45조827억원)에서 미국이 60.57%(27조3058억원)로 1위, 중국이 28.31%(12조7623억원)로 2위입니다.
 
대중 반도체 수출 축소는 삼성전자에 더 타격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삼성은 범용 HBM 판매에 집중하면서 중국 등 시장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주요 5대 매출처에 미국 퀄컴을 제외한 홍콩과 대만 업체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 고객사를 확보하여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비중이 큽니다.
 
아울러 양사 모두 높은 수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수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2일부터 반도체 등 개별 품목 관세와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산업연구원은 미국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과 한국 등 주요국에 10%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반도체 수출이 5.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만약 25% 관세가 부과되면 수출액 감소 규모는 10% 안팎까지 늘어갈 것이라고도 내다봤습니다.
 
칩스법 폐지 가능성도 업계 고심거리 중 하나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선거운동에서부터 칩스법을 ‘형편없는 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후 대통령 취임 후로는 줄곧 법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칩스법 지원금을 받아 미국에 제조시설을 짓기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향후 투자 계획에 대해서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셈법이 복잡해졌습니다.
 
여기에 한국이 미국의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망은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민감국가 지정의 여파로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과의 인적 교류와 공동 연구, 프로젝트 참여 등이 제한될 수 있어 AI 반도체 분야에서의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중 반도체 수출액이 줄어든 것은 미국의 제재 영향도 있겠지만, 중국의 기술 굴기 성과로 보인다”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속도를 높이는 등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업의 기밀을 밝히는 등 요건이 높다”면서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짓는데 집중하면 미국의 통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어 자국 내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 명예교수는 “엔비디아는 쿠다라는 자체 OS를 통해 4만 개 업체와 연결이 되어있으며, 해당 데이터를 가지고 GPU를 만들기 때문에 수율을 높일 수 있다”며 “삼성과 하이닉스가 향후 기술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자체 OS 개발을 통한 수율 향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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