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사통' 박창환의 무리수?…왕정홍 전 방사청장 1심서 '무죄'
경찰, '7조원대 KDDX 입찰비리' 수사하며 왕정홍 전 청장 압수수색도
검찰 단계서 '비리 혐의없음' 처분됐지만 경찰은 수사강행·구속송치
다른 혐의도 법원서 증거없음 '무죄'…'무리한 표적수사' 지적 불가피
2025-12-26 14:47:44 2025-12-26 14:47:44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윤석열정부 당시 경찰이 전 정부 인사를 표적으로 겨냥해 벌인 방위사업청 로비 의혹 수사와 관련해 왕정홍 전 방사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습니다. 무리하게 '별건 수사'를 밀어붙인 경찰의 완패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지휘한 건 경찰 내 대표적 '수사통'으로 꼽히는 박창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장(총경)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박 총경은 지난 6월 내란특검에 파견돼 윤석열씨를 대면 조사했고, 현재는 통일교 특별전담수사팀까지 이끌고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박 총경으로서는 이번 무죄 판결로 인해 '무리한 표적 수사'였다는 비판과 함께 수사 신뢰도에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이 2020년 12월 경남 창원시 창원시청에서 열린 방산혁신클러스터 사업 주관기관·기업 협약식에 참석했다. (사진=방위사업청 제공)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강세빈)는 지난 19일 변호사법 위반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왕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왕 전 청장은 2020년 12월 방사청장에서 물러난 후 한 세무법인에서 일하면서 정보통신기술(IT) 업체 A사로부터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전구합동화력운용체계(JFOS-K) 사업과 관련해 방사청을 연결해 준 대가로 고문료 1억18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습니다. 또 해당 업체가 소유한 비상장법인 주식을 타인 명의로 저가에 매수해 7600만원 상당의 이익을 얻은 혐의도 있습니다. 
 
왕 전 청장에 대한 경찰 수사는 '7조원대 KDDX 사업' 입찰비리 의혹에서 출발했습니다.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는 HD현대중공업이 2020년 KDDX 기본설계 사업을 수주할 당시 입찰비리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왕 전 청장이 방사청 내부규정을 바꿔 HD현대중공업에 특혜를 줬다고 의심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2023년 8월 방사청을 압수수색하고, 4개월 뒤인 12월 왕 전 청장 주거지까지 뒤졌습니다.  
 
박 총경은 2024년 2월 중대범죄수사과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이후 경찰 수사도 가속화됐습니다. 같은해 9월 입찰비리 의혹과 관련해 왕 전 청장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겁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반려하고 보완수사를 요구했습니다. 경찰의 입찰비리 수사가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찰은 두 달 뒤 입찰비리와 무관한 '방사청 로비' 의혹만으로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 결국 왕 전 청장을 구속했습니다. 
 
경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입찰비리 수사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경찰은 2024년12월 직권남용죄와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왕 전 청장을 검찰에 구속송치했습니다. 검찰은 이번에도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혐의 없음으로 처분하고,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만 기소했습니다. 
 
1심 재판부 역시 왕 전 청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왕 전 청장이 청탁을 받거나 알선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왕 전 청장이 비상장법인의 주식을 저가에 사들인 건 일반적인 고문활동과 개인적 친분을 이용한 매수일 뿐이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시기와 상황상 방사청 알선이 불가했다고도 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사는 2020년 6월 KDDX 연구개발 사업과 전구합동화력운용체계(JFOS-K) 사업 경쟁입찰에 대형 시스템통합(SI)업체의 협력업체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같은해 9월 두 사업 모두 경쟁업체가 수주하면서 A사는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왕 전 청장이 A사 대표를 소개받은 건 이듬해인 2021년 3월입니다. A사로부터 세무법인을 통해 고문료를 받은 건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입니다. 주식을 양수한 것도 2021년 6월입니다. 
 
재판부는 "경쟁업체가 사업을 수주한 관계로 다른 업체와 협력업체를 계약한 A사는 KDDX 사업과 JFOS-K 사업에 참여하거나 서버를 납품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습니다. 
 
아울러 재판부는 "왕 전 청장이 KDDX 사업 또는 JFOS-K 사업 관련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만한 객관적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왕 전 청장으로부터 A사가 방사청에 서버 납품하도록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는 A사 대표 증언, '왕 전 청장에게 A사에 관해 들은 적이 없다'는 강은호 전 방사청장(왕 전 청장 후임) 증언도 인정됐습니다. 재판부는 "A사가 왕 전 청장에게 특별히 고액의 고문료를 지급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왕 전 청장만 특별히 A사 관계사의 주식을 저가로 매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왕 전 청장에 대한 수사를 지휘한 박 총경은 최근 '12·3 비상계엄' 관련 수사와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 수사를 이끌며 주목받았지만, 이번 무죄 판결로 무리한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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