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화가 휴지 조각이 되고 있네요."
최근 추락하는 원화 가치를 바라본 한 지인의 말이다. 환율 급등에 괴담까지 횡행하는 지경이라더니, 지인의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을 들으니 원화 괴담이 없는 말은 아닌가 보다. "원화 휴지 조각? 헛소리"라며 국내 유튜버들을 저격한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다시금 생각난다.
원·달러 환율이 다시 치솟고 있다. 지난 연말 외환당국의 고강도 개입에도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해외주식 양도세 한시적 면제는 물론 국민연금과 수출 대기업까지 총동원하며 환율 급등을 눌러왔지만, 원·달러 환율은 13일 오전 1473원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전달보다 26억달러나 감소했는데, 원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대규모로 내다 팔아도 원화의 하락을 막지 못했다.
환율은 새해 들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랐다. 지난 연말 전방위적 시장 개입으로 환율을 1480원 선에서 1429.8원(12월29일, 주간 종가 기준)까지 떨어뜨려놨지만, 2주일 만에 40원가량 올랐다. 인위적 조정 효과는 보름도 채 가지 못했고, 시장 수급을 거스른 일시적 시장 개입의 한계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초부터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그린란드 관련 강경 발언, 이란의 반정부 시위 확산 및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 등 지정학적 불안이 달러 강세를 부추긴 측면은 있다. 통상 달러인덱스가 오르고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일반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지금의 원화 약세는 이런 통상적 기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국내 기업과 개인투자자, 해외투자자들까지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미국 주식을 포함한 달러 자산 매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이 시장 개입까지 하면서 환율을 낮춰 원화 가치를 떠받들었는데, 개인들은 되레 달러를 싸게 살 기회로 여기고 있다는 점은 통상적인 설명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환율은 한 국가의 경제 실력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한다. 시장이 원화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결국 지금 우리 경제의 체질이 약화하고 있고, 단기간에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을 환율이라는 숫자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인위적 개입의 부작용이 보여주는 것은 당국과 원화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환율 상승을 서학개미나 유튜버 탓으로 돌리지 말고 경제 체질을 바꾸는 근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통화 가치는 고통스럽더라도 경제 체질을 바꾸는 정공법으로만 지킬 수 있다. 노동·규제 등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보강하는 일이 급선무다. 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현재 원화 약세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환율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신뢰와 구조적 경쟁력을 시험하는 국면으로 볼 수 있다. 환율 급등보다 더 뼈아픈 대목은 신뢰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자.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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