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정부의 환율 방어 기조에 맞춰 해외주식 투자를 유도하는 이벤트를 중단하기로 했던 증권사들이 외화 계좌 이자를 연 2%대까지 인상하며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은행권이 외화 예금 금리를 사실상 없애며 정책에 협조하는 것과 달리 증권사들은 외화예탁금 고금리를 앞세워 달러 보유를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는 달러 유출을 막고 있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달러를 붙잡기 위한 경쟁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은 최근 외화예탁금 이용료율을 잇따라 인상하거나 새로 도입했습니다. 예탁금 이용료는 투자자가 증권사 계좌에 보유한 현금에 대해 지급되는 금액으로, 사실상 이자 역할을 합니다. 해외주식을 매수하지 않고 달러를 보유하기만 해도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메리츠증권(008560)은 올해 1월부터 외화예탁금 평균잔고가 1000달러 이하일 경우 연 2%, 초과분에는 연 0.8%의 이용료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키움증권(039490) 역시 1000달러 이하 구간에 연 2%, 초과 구간에는 연 0.6%의 외화예탁금 이용료율을 신설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006800)의 인상폭은 더욱 큽니다. 기존에는 1000달러 이하 외화예탁금에 연 0.01%의 이용료율을 적용했으나 올해부터 이를 연 2%로 대폭 상향했습니다. 평균잔고가 1000달러를 초과할 경우에도 연 0.6%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인상폭만 놓고 보면 사실상 200배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예탁금 이용료율 제도 개선에 나서며 증권사들이 예탁금을 통해 얻은 수익을 고객에게 합리적으로 환원하도록 산정 기준과 공시를 강화했습니다. 다만 최근 외화예탁금 이용료율은 개정된 모범규준 수준을 웃도는 사례가 늘며 과열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실제로
삼성증권(016360)과 KB증권,
신한(005450)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의 외화예탁금 이용료율은 0.1~0.3%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일부 증권사들의 연 2%대 외화예탁금 금리는 업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외화예탁금 이자가 오르는 동안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적용받는 원화예탁금 이용료율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메리츠증권의 원화예탁금 이용료율은 100만원 미만 연 1.5%, 100만원 초과 연 0.6%로 외화예탁금(0.8~2%)보다 낮습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100만원 초과 원화예탁금 이용료율을 기존 연 0.75%에서 0.6%로 인하했습니다. NH투자증권도 외화예탁금 이용료율을 신설하면서 원화예탁금 이용료율을 100만원 이하 0.8%, 100만원 초과 0.4%로 각각 0.2%포인트씩 낮췄습니다. 같은 종합주식계좌 안에서도 원화보다 외화 현금이 더 높은 금리를 받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외화예탁금 고이자 경쟁은 최근 증권사들이 신용거래 이자율을 인하하는 흐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신용거래 이자 인하로 원화 자금의 거래 회전율을 높이는 동시에 외화예탁금 금리를 통해 달러 잔고를 묶어두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정부는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화 예금 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한편 해외주식을 매도해 국내 주식으로 자금을 옮길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국내주식복귀계좌(RIA)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화 계좌에 고금리를 제공할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는 달러를 원화로 전환할 유인이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에는 해외주식 거래 규모보다 계좌에 남아 있는 달러 잔고가 수익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외화예탁금 금리는 고객이 달러를 쉽게 빼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엔화 강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위협으로 달러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27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에 달러화 거래가가 표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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