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신탁위기)②법원이 당긴 트리거…책임준공은 독배였나
준공 지연에 계약 문구가 곧 전액 배상 의무로
법원이 책임준공을 형식적 확약에서 상환 구조로
충당금 확대·대위변제 현실화…NCR에 직격탄
2026-02-19 06:00:00 2026-02-19 06:00:00
이 기사는 2026년 02월 12일 17:03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규제 환경이 변화하면서 부동산신탁업 전반에 구조적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책임준공형·차입형 토지신탁을 중심으로 외형 성장을 이어온 기존 비즈니스 모델은 대손충당금 확대와 자본 부담이라는 현실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상황이다. 한때 수익의 원천이었던 구조가 이제는 리스크의 출발점으로 작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여기에 법원의 책임준공 관련 판결과 NCR(영업용순자본비율) 규제 강화가 더해지며 신탁업계를 둘러싼 환경 변화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제도와 판례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신탁사의 재무 구조와 사업 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IB토마토>는 신탁업계 전반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수익성 둔화, 회계 부담 확대, 자본 압박의 흐름을 따라가며, 부동산신탁 비즈니스가 현재 어떤 국면에 접어들었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IB토마토 김소윤 기자]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 확약이 법원 판결을 계기로 우발채무에서 실질 부채로 전환되고 있다. 2025년 이후 법원이 준공 지연에 대해 대출 원리금 전액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계약 문구는 곧바로 현금 유출 의무로 연결됐다. 소송 패소는 충당금 확대와 대위변제로 이어졌고, 재무제표 밖에 머물던 위험은 NCR(영업용순자본비율) 압박이라는 숫자로 현실화됐다. 책임준공은 더 이상 관리 리스크가 아니라, 자본을 직접 잠식하는 '조건부 차입' 구조로 재해석되는 모습이다.
 
KB부동산신탁 책임준공 맡은 경기 평택시 청북읍 후사리 물류센터 전경. (사진=디에이건설 제공)
 
법원이 당긴 방아쇠…책임준공, 우발채무에서 '숨겨진 차입'으로
 
12일 신탁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부동산 신탁사들이 수임한 책임준공형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장은 총 239곳이며, 이 가운데 34곳에서 준공 기한을 넘긴 미이행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된다. 이 중 최근 2년간 제기된 책임준공 손해배상 소송만 15건 이상 진행 중이며, 관련 소송가액은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준공 확약이 업계 전반의 재무 리스크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1~2년 사이 책임준공을 둘러싼 주요 소송들을 살펴보면, 먼저 2025년 5월 평택 물류센터 사건을 시작으로 2026년 1월 인천 간석동 오피스텔 사건까지 이어졌으며, 현재까지 선고된 1심 판결은 모두 신탁사 패소로 귀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물류센터·주상복합·오피스텔 등 사업 유형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법원은 책임준공 기한을 넘긴 경우 대출 원리금 전액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금융지주 계열 신탁사들(신한(005450)·KB) 뿐 아니라 비상장 신탁사(무궁화, 신영 등)까지 전방위적으로 같은 법리가 적용되면서, 책임준공 확약은 더 이상 형식적 신용보강 장치가 아니라 사실상 상환 의무에 준하는 계약 구조로 해석되는 흐름이 굳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판결의 파장은 2023년 이전까지 책임준공 관련 선례가 사실상 전무했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시장 호황기에는 사업이 예정대로 마무리되면서 준공 지연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고, 신탁사가 실제로 대출 원리금을 대신 갚은 사례도 없었다. 2015년 전후 도입된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준공을 보장해 주는 대신 사업비의 1~2% 수준 수수료를 받는 구조로, 중소 건설사의 PF 자금조달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23년 이후 공사비 급등과 건설사 유동성 악화가 겹치면서 일부 사업장이 기한 내 준공에 실패했고, 그동안 잠재돼 있던 책임준공 부담이 소송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법원은 준공 기한을 넘기면 대출 원리금과 이자를 배상하도록 한 계약 조항을 그대로 인정했다. 책임준공을 지키지 못한 것은 신탁사의 계약 위반이며,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신탁사들이 이는 타인의 빚을 대신 보증한 것과 같아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책임준공 확약은 법적으로 사실상 지급보증에 가까운 책임으로 정리된 셈이다.
 
이 판결은 즉시 신탁사들의 재무제표에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주석에만 적어두던 우발부채는 충당부채로 바뀌었고, 실제 대위변제와 현금 유출이 발생했다. 충당금이 크게 늘면서 손익과 자기자본이 줄었고, PF 사업장에 투입된 신탁계정대도 부실로 분류되는 규모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NCR 등 건전성 지표에도 직접적인 부담이 가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한·KB 사례가 드러낸 리스크 전이 경로
 
이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신한자산신탁과 KB부동산신탁이 꼽힌다. 먼저 신한자산신탁은 책임준공형 신탁을 적극 확대해 온 회사로, 2023년 이후 복수의 PF 사업장에서 준공 지연이 발생하면서 대주단과의 분쟁에 휘말렸다. 전환점은 2025년 5월 경기 평택 물류센터 사건이었다. 준공 기한을 넘긴 데 대해 새마을금고 등 대주단이 약 256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리금 전액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후 2025년 8월 안성 물류센터(약 60억원), 11월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약 575억원)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전액 배상 판결이 이어졌다. 이렇게 이어진 연속 패소는 책임준공 확약의 법적 책임 범위를 사실상 확정짓는 계기가 됐다. 
 
신한자산신탁은 1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소송을 길게 끌기보다는 손실을 먼저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평택·안성·인천 원창동 사건에서 전액 배상 판결이 나오자 해당 금액을 재무제표에 충당부채로 반영했고, 일부는 공탁과 대위변제 절차에 들어갔다. 사실상 판결 방향을 수용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판결을 뒤집기 위한 장기 항소전보다, 손실을 조기에 확정해 자본 부담을 관리하려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고 있다.
 
신한자산신탁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조기 정리가 오히려 재무 건전성 회복과 사업 정상화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라며 "책임준공형 신탁은 도입 당시 중소 건설사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한 구조였으며, 최근 손실은 경기 악화와 공사비 급등이 겹친 외부 변수의 영향이 크다"이라고 밝혔다.
 
KB부동산신탁 역시 책임준공형 신탁을 적극 도입해 성장해 온 회사다. 지난 2017년 이후 다수 PF 사업장에서 준공확약을 제공해 왔으나, 2023년 이후 일부 사업장에서 준공 지연이 발생하면서 분쟁이 본격화됐다. 첫 판결은 인천 남동구 논현동 주상복합 PF 사건에서 나왔다. 대주단이 약 1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26년 1월 서울중앙지법 1심은 책임준공 미이행을 인정하며 원리금 전액과 지연이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는 KB부동산신탁의 첫 책임준공 소송 패소 사례로 기록됐다.
 
KB부동산신탁 측은 해당 PF 대출금의 상당 부분이 이미 순차적으로 상환이 진행되고 있었고, 분양사업 구조상 실제 발생한 최종 손실 범위 내에서 배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책임준공 관리형토지신탁계약 체결 과정에서 책임준공의무 미이행 시 대출원리금 전액이 아닌 실제 손해를 배상하려는 의도로 신탁계약서 문구를 만들었고 이를 재판에서 주장했으나, 법원에서 이러한 의도를 감안치 않고 타 신탁사들의 패소판결을 따라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라며 "이번 판결이 과도한 책임을 인정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법리 보완을 통해 항소를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김소윤 기자 syoon1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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