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핵추진 프로그램 75주년 기념 홍보물. (사진=미 해군)
대한민국에 핵추진잠수함 도입이라는 전략적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기 도입이 아니다. 장기적인 해양 전략과 국가 억제력의 틀을 다시 설계하는 선택이다. 기회는 마련됐다. 이제 그것을 실제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정부는 범정부 협의체를 가동하고, 외교부와 국방부에 전담 조직을 신설하며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는 조직을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핵추진잠수함 사업은 복합적이다. 핵연료 문제는 국제 비확산 체제와 맞닿아 있고, 한·미 원자력 협정이라는 틀 안에서 추진돼야 한다. 미국과의 협의는 외교적 판단을 필요로 하며, 막대한 예산은 국가 재정의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여러 부처가 동시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업은 기술적 일관성을 요구한다. 설계부터 건조, 시험과 운용까지 하나의 기준 아래 관리되지 않으면 안전과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대형 무기 사업에서는 한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는 체계가 중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정책은 여러 부처의 판단을 모아야 하고, 기술은 집중된 책임 아래 움직여야 한다. 성격이 다른 두 기능을 한 조직 안에 모두 담으려 하면 결정은 늦어지고 책임은 흐려질 수 있다.
미국은 이를 제도적으로 구분했다. 냉전 시기 원자력 정책과 연료 관리는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가 맡았고, 잠수함 원자로의 설계와 안전관리는 해군 핵추진프로그램(Naval Reactors)이 전담했다. 정책은 정치적으로 통제하고, 기술은 단일 책임 아래 둔 구조였다. 서로 다른 논리를 충돌시키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작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한국도 이 원칙을 참고할 수 있다. 연료 정책과 대미 협상 방향, 예산 범위와 같은 전략적 사안은 최고 의사결정권자 직속 기구가 한 곳에서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 반면 설계와 건조, 시험은 독립된 사업 책임자에게 맡겨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사업 초기에는 방향을 정하는 일이 우선이다. 프레임이 명확하지 않으면 실행도 안정될 수 없다. 기본 틀이 잡히면 그다음은 흔들림 없는 기술 집행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초기에는 방향이 중요하고, 이후에는 완성도가 중요하다.
핵추진잠수함 도입은 긴 여정이다. 기회의 창은 오래 열려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방향과 책임 있는 집행 구조가 갖춰진다면, 그 기회는 일회성 정책에 그치지 않고 국가 전략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기회의 창을 성공의 관문으로 전환하는 일은, 결국 제대로 기능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에 달려 있다.
양용모 세종대 국방AI융합체계학과 석좌교수·전 해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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