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부동산 개혁의 분수령, ‘사고 습관’의 대전환에 있다
2026-02-23 06:00:00 2026-02-23 06:00:00
이재명정부의 부동산 개혁 드라이브가 가파르다. 지난해 6·27 대출 규제와 9·7 공급 대책에 이어 최근 발표된 주택정책까지, 정부는 쉴 새 없이 시장을 몰아붙이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불로소득을 얻겠다는 다주택자의 눈물보다 망국적 투기를 잡는 것이 우선”이라며 천명한 공격적인 개혁 의지는 “경제 왕당파의 증오를 환영한다”며 1930년대 금융자본과 기득권에 맞서 뉴딜을 이끌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개혁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저항에 직면한다. 한 세기 전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통찰처럼, 개혁은 기존 제도하에서 ‘대가 없는 불로소득’(something for nothing)을 누려온 기득권에게 자산 가치의 명백한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본 파업’과 ‘조세 저항’을 통해 필사적으로 대응한다. 서울 강남과 마용성 등지에서 나타나는 매물 잠김과 재건축 지연 움직임은 기득권의 본능적인 방어 기제이다.
 
더 큰 난관은 대중의 내면화된 욕망이다. 집 없는 서민조차 투기적 이득을 꿈꾸는 상황을 베블런은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금전적 경쟁심’(pecuniary emulation)이라 불렀다. 2030 세대가 고강도 대출 규제에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분노하는 이유도 주택을 ‘거주 공간’이 아닌 ‘계층 상승의 수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을 향한 욕망이 사회 전체의 ‘사고 습관’(habits of thought)으로 굳어진 상황에서, 도덕적 설득은 냉소만 증폭시킬 뿐이다.
 
뉴딜의 진정한 성취는 대공황 극복과 고용 회복을 뛰어넘어, ‘사고 습관의 전환’을 통해 미국을 전혀 다른 사회로 바꾼 데 있었다. 대공황 이전 미국은 공공 자원의 사유화와 자산 가격 상승을 통한 불로소득에 도취된 사회였다. 금융가나 기업가는 물론 농부들까지도 땀 흘린 노동보다 주가 급등과 땅값 상승을 쫓는 ‘투기적 습관’에 매몰됐고, 유용한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인간 본연의 성향, 곧 ‘장인 본능’(instinct of workmanship)은 억압됐다. 시세차익만을 쫓는 ‘금전적 경쟁’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사람들은 유용한 것을 만드는 기쁨보다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약탈적 경쟁에 몰두했고, 경제의 생산성은 떨어졌으며 삶은 각박해졌다. 대공황은 이 과정에서 쌓인 거품 및 황폐해진 산업적 기풍의 필연적 결과물이었다. 
 
1940년 4월16일 워싱턴에서 열린 워싱턴 세너터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시즌 개막전에서 시구를 준비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뉴시스)
 
뉴딜은 금융 규제로 투기의 돈줄을 끊는 한편,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도서관을 짓고 댐을 만드는 대열에 동참시킴으로써 단순한 소득 보전을 뛰어넘어 ‘가치 창출의 희열과 긍지’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아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기득권의 약탈적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강력한 집단적 힘을 제도화했다. 단순히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인식을 지탱할 ‘조직된 힘’을 구축한 것이다. 이로써 투기적 자산가치에 목매던 대중은 실물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적 주체이자 조직된 권력으로 다시 호명되었고, 이는 미국 사회를 ‘개별적 각자도생’에서 ‘공동체적 연대’로 이동시키는 장구한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선례는 이재명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동산 공화국 해체’라는 방향은 옳으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선언 또한 시장에 ‘투기적 버티기는 통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호를 줄 것이다. 하지만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다. 개혁의 성패는 국민의 ‘사고 습관’을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에서 ‘생산적 활동에 연계한 자산 증식 및 주거 안정’으로 전환시키는 데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핵심 요충지에 지분적립형·토지임대부 주택과 고품질 공공임대, 시민 주도의 사회주택을 과감히 공급해 소유하지 않아도 주거 욕구가 온전히 충족되는 성공 모델을 입증해야 한다. 주택이 자산 증식의 도구가 아닌 안정된 삶의 기반으로 기능하는 사례가 축적될 때, 시민들은 비로소 투기적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과 삶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그런데 주거 안정만으로 욕망의 방향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부동산에서 빠진 에너지가 다른 투기 수단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창업·기술·사회적 기여 등 생산적 활동이 보상받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베블런은 “역사에는 어리석은 제도의 승리가 더 빈번하게 기록돼 있다”고 관찰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그 비관을 뚫고 장인 본능의 회복과 노동의 조직화를 통해 ‘투기적 각자도생’에서 ‘생산적 연대’로 나아가는 대전환에 성공했다. 이제 질문은 우리의 대통령과 시민들에게 향한다. 기득권의 파상공세와 대중의 내면화된 욕망이라는 이중의 벽을 뚫고, 부동산 개혁의 험난한 길을 끝까지 완주할 의지와 용기가 있는가? 집을 삶의 든든한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일확천금의 욕망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아가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시민의 권리’로 제도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사고 습관’을 대전환할 역량이 있는가?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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