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19일. 지귀연 판사의 내란 재판부는 윤석열의 계엄 계획이 “아주 치밀하게 수립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상당 부분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을 피고인의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 이전부터 장기 독재를 위한 내란을 계획했다는 특검팀의 결론을 일축하면서 “(야당의 탄핵, 예산 삭감이 이어지자) 2024년 12월1일 무렵 ‘더는 참을 수 없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라고 결심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이 사건의 실체에 부합한다”고 했다. 12·3 내란이 오랫동안 계획된 범행이 아니라 우발적 범행이라는 취지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물리력의 행사를 자제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을 감경 사유로 거론한 부분도 앞선 한덕수, 이상민에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와 전혀 다른 판단이다. 이로 인해 사형이 구형되었던 윤석열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되고, 그 외 중요 종사자들도 구형에 비해 낮은 형량이 선고되었다.
계엄 선포에 치밀함과 계획성이 부족하다는 재판부 판단에 대한 논란은 제껴두고서라도 일단 원초적인 질문을 해보자. 윤석열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야당이 다수인 국회는 물론이고 사법부에도 강한 불신을 표명하며 “이게 나라냐”는 저주와 탄식으로 거의 대부분의 대통령 임기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용현이 2024년 12월8일,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한 내용은 이렇다.
“제가 경호처장으로 임명되어 대통령님과 함께 근무를 시작한 이후에 수많은 이야기를 수백 번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늘상 기회가 되면 하시는 말씀이 ‘우리 사회에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 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 세력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반국가 세력을 정리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헌법 가치와 헌정 질서를 갖추어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나는 대통령이 끝날 때까지 이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수시로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들은 것만으로도 100번이 넘는데 대통령님의 애국심과 구국의 일념에 대해 존경하고 공감하고 동의해 왔습니다.”
이 진술을 보면 윤석열이 12월1일에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우발적으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결심했던 것을 그 시점에 결행한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난다. 이 진술 다음 진술에서 김용현은 “100번이 넘는데”라는 표현을 “수백 번은 된다”는 표현으로 오히려 더 강조한다. 임기 기간 거의 매일 자나 깨나 “반국가 세력 척결”을 주문처럼 외우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계엄이 우발적인 사건에 불과한가. 다소 어설픈 국회 봉쇄라든지, 헬기 지연으로 늦어진 군 출동을 보면 계엄에 치밀함이 부족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윤석열이 정치적 경쟁자나 입법부에 대한 증오와 보복의 감정이 합리적인 계산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앞서는 증오범죄는 치밀함과 계획성이 없더라도 가능하다.
내란 사건 1심 선고 판결문 중에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5000명이 넘는 군인과 경찰이 동원된 계엄령이 우발적으로 이뤄졌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계엄 당시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 모습. (사진=뉴시스)
윤석열 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막상 계엄을 실행해야 하는 관료 집단은 어떤가. 2023년부터 이뤄진 석연치 않은 군 인사, 2024년 계엄실무편람 개정으로 국회에 계엄 선포를 ‘통고’하는 것에서 ‘통보’로 변경, 방첩사령관의 부정선거 유튜브 수집 및 자료 정리와 대민 작전용 ‘흑복’ 구입, 드론작전사령부의 거듭되는 대북 드론 투입 등은 뭔가. 비상계엄 선포를 향한 미세한 움직임들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말 한마디로 심야에 5000명이 넘는 경찰과 군이 동원된 것은 능력 있는 관료 기구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날 방첩사, 특전사, 정보사, 수방사 병력들의 안면 마스크 착용 등 복장도 통일되었고, 무장도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윤석열 본인은 치밀하지 못했지만 관료라는 집단은 나름 치밀했기 때문에 이 같은 행동이 가능했던 것 아닌가. 진실을 외면하는 판결은 정의의 편이 아니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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