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실용’에 대한 오해와 편견
2026-08-05 06:00:00 2026-08-05 06:00:00
요즘 ‘실용’이란 단어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재명정부가 ‘실용’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삶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정책이든 가리지 않는 정부로 끊임없이 진화하겠다”며 “대격변의 시대에 맞서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변화에 가장 능동적인 ‘혁신적인 실용 정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용’을 여러 갈래로 해석한다. 우선, ‘실용’을 기업 우선의 정책 전환이라 본다. 이 대통령이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이 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호남 반도체 공장 건설 문제는 교섭 의제가 아니라고 발언한 것을 노조는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민주당 대표 시절에 노란봉투법을 ‘합법 파업 보장법’이라 밀어붙이고, 취임 직후 신속하게 법안을 처리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반도체 사업을 키운다는 실용적 명분에 밀려 노동권 보호가 위축될 것을 노동계는 우려한다. 
 
‘실용’을 성장론의 복귀로 치환하는 시각도 있다. 호남권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며 전력과 용수 공급 제약을 해소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호남 지역에서 진행되어온 친환경 정책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간주한다. 환경단체는 경제성장 논리를 앞세운 개발 열풍이 ‘실용’의 탈을 쓰고 돌아왔다고 의심한다.
  
이념적으로 ‘실용’은 무색이나 회색이다. 이념이 없거나 중도에 가깝다. 더 나아가 ‘실용’이 포용으로 확대되어 진보·보수 모든 이념을 통합하면 색깔은 더욱 불분명해진다. 자연스럽게 강성 이념론자들은 ‘실용’에 거리감을 느끼며 불안하게 생각한다. 민주당 골수 지지자들은 이재명정부의 정체성이 ‘진보’에서 ‘실용’으로 전환되며 개혁 의지가 약화할 것을 걱정한다. 검찰개혁과 보완수사권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 여기에 속한다. 이 대통령은 급격한 개혁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실용은 개혁의 반대말이 아니다’라고 설명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강경 급진파는 ‘실용’을 기회주의라고 헐뜯으며 이권을 찾아 헤쳐 모이는 ‘뉴이재명’이 득세한다고 비난한다.
 
‘실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다수는 조용한 반면, 부정적으로 보는 소수가 목소리를 높인다. ‘실용’에 대한 의견의 강도는 이념과 진영에 따라 달라진다. 이념이 선명하고 진영이 뚜렷할수록 입장이 명확하다. 특히, 진보층에서 ‘실용’을 강력히 반대하는 것이 재미있는 현상이다. ‘실용 정책’을 추구하는 이재명정부가 자기네 편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여기에 민주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투쟁이 치열해지며 정체성 논박이 더욱 거세게 가열되고 있다. 
 
실용은 기업 친화, 성장주의, 중도 노선과 같은 특정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 원리다. 그러나 실용에도 원칙과 일관성이 필요하다. (이미지=챗GPT)
 
실용을 둘러싼 혼동을 가중시킨 것은 이재명정부의 정책적 혼선에 있다. 여러 상충적 정책을 일거에 수행하며 혼란과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가령, 재정 지출을 확대하며 돈을 풀면서 물가와 집값을 잡으려 하니 모순적이다. 여러 마리 토끼를 동시에 다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꼴이다. 
 
실용을 결과 일변도로 추진해 과속과 과열의 후유증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 단적인 예가 주가 부양이다. 주가 상승 목표를 정하고 밸류업 정책을 세게 펼치다 반도체 호경기로 과열된 시장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까지 더해 변동성을 키운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내면 실용이라고 믿는 데서 벌어진 일이다. 실용 전환의 과도기에 미숙한 정책 운용과 지지층의 반발로 시행착오를 겪고 갈팡지팡한 것은 이해가 된다. 실용에도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 앞으로 남은 4년 동안에 이념이나 진영에 흔들리지 않고 굿굿히 실용의 방향성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먹고사는 문제다. 국민의 민생고를 해결해 걱정 없이 편안히 살게 해주는 것이 유능한 실용 정부다. 국민은 대통령의 색깔이 희건 검건 상관하지 않는다. 국민이 잘살 수 있도록 나라를 발전시키면 훌륭한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존경할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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