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대한민국 사법부 지형이 대대적으로 바뀝니다. 대법관을 26명까지 늘리는 한편 법 왜곡죄를 신설하고 재판소원제 도입하는 내용의 ‘사법개혁 3법’이 모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입니다. 앞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복할 경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법을 왜곡한 판·검사에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습니다. 공고히 유지됐던 사법부 기득권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입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대법관 증원'을 핵심으로 하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종결 투표가 시작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가운데 김민석(오른쪽) 국무총리와 민주당 의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판·검사에 ‘법 왜곡죄’ 신설…최대 징역 10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법 왜곡죄(형법 제123조의2)가 신설된 점입니다. 형법 개정안은 판사와 검사가 법령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적용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법 왜곡죄는 구체적으로는 △판·검사와 수사관이 형사사건에서 법령의 적용 요건을 따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재판·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거나 위·변조된 증거를 사용한 경우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하거나 적법한 증거가 없음을 알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한 경우 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번 입법을 통해 검찰의 대표적인 제 식구 감싸기로 일컬어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과 같은 사례의 재발을 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옵니다. 박용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 부소장은 “고의가 명백히 입증된 경우에 한해 법 왜곡죄가 적용되기 때문에 우려만큼 처벌이 광범위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법기관 내부의 자정과 징계가 충분히 작동했다면 입법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확정판결’도 헌재 심판 대상…재판소원 도입
재판소원제 도입으로 확정판결 중 기본권 침해가 있었던 사건의 경우, 확정 뒤 30일 안에 헌재에 헌법소원 청구도 가능해졌습니다. 개정법은 공포 즉시 시행되는데, 이르면 이달부터 법원 확정판결에 대한 재판소원 청구가 가능해집니다.
‘사실상 4심제’라는 지적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법원 재판과 헌재 재판소원은 다른 성격이라고 설명합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의 기본권 침해가 문제가 될 때 재판소원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헌재가 법원의 법률 해석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3심제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상고심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다는 의심이 있을 때에 한해서 한 번 구제를 받게 해줘야 한다. 국민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재판소원제 도입으로 헌재와 법원 간 권한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달 25일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재판 확정이 실질적으로 지연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반면 헌재는 지난달 13일 “헌법적 의미를 갖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에만 한정될 것”이라며 “제도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접수 사건 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영재 전 법원행정처장을 비롯한 법원장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관 14명→26명…전원합의체 방식은 과제
대법관 수는 현재 14명(대법원장 포함)에서 26명으로 늘어납니다. 2028년부터 3년간 매년 4명씩 단계적으로 대법관을 증원해 2030년부터 26명 체제가 됩니다. 대법관 증원은 ‘87년 체제’ 이후 처음입니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운영 방식 역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전합은 대법관 전원이 설득과 토론을 거쳐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갈등과 법적 분쟁 해결의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26명이 함께 사건을 심리하고 법령을 통일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앞서 민주당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24명을 절반씩 1·2 연합부로 나눠 기존 전원합의체를 대체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1인당 법조 경력 14년 차 이상 재판연구관 8.4명이 필요해 오히려 하급심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하지만 박용대 부소장은 “애초에 재판연구관에 의해 재판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대법관에 의해 재판이 이뤄져야 했다”며 “2년 후부터 매년 4명씩 3년 증원하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재판연구관을 굳이 법관이 아닌 학자나 변호사들로 충원해서 보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사퇴…후폭풍도 거세져
입법 과정에서 사법부의 반발도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25일 법 왜곡죄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박영재 전 법원행정처장은 같은 날 전국 법원장들을 긴급 소집해 임시회의를 열고 “사법부의 우려에도 공론화와 숙의 없이 본회의에 법안이 부의된 상황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사법개혁 3법 법안이 잇따라 통과되자 박 처장은 이틀 후인 27일 사퇴했습니다.
여당과 사법부 간 긴장 상태 속에 대법관 공백 문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는 3일 퇴임하는 노태악 대법관의 후임 제청은 40일 넘게 이뤄지지 않으며 대법관 공백 사태는 현실화됐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아직 별도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오는 12~13일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열고 사법개혁 3법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