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밤의 황제 수리부엉이
2026-03-16 14:15:40 2026-03-16 16:38:30
수리부엉이 암컷이 둥지 근처에서 수컷이 사냥해 오길 기다리고 있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온갖 초목에 연두색 새순이 돋아날 무렵 1년 중 가장 바쁜 밤의 황제가 있습니다. 수리부엉이(Eurasian Eagle Owl, 국가자연유산 324호,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입니다. 한국의 텃새 중 덩치가 가장 크고(성조의 키가 70㎝, 날개길이 1.8m) 번식을 가장 일찍 시작하는 야행성 맹금류입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 잔설이 남아 있는 벼랑 끝 바위 아래 맨땅에서 수리부엉이 부부는 이미 부화한 새끼를 열심히 기르고 있습니다. 수리부엉이 부부는 1월 초 짝짓기를 시작해 빠른 녀석들은 2월 말에서 3월 초에 알을 부화합니다. 특별히 둥지를 만들지 않고, 대신 알이 부화하기 전까지는 암컷이 계속 품고 있지요. 3월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먹이를 계속 공급하며 주변을 지킵니다.
 
수리부엉이 둥지는 인간이나 덩치 큰 포유류가 접근할 수 없는 절벽이기 때문에 둥지나 주변의 위장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비만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곳이면 적당합니다. 인간이 어쩌다 둥지 근처에 접근하면 몸을 부풀려 덩치를 더 크게 과장하며 부리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내 다가오지 못하게 위협합니다. 야행성 맹금류인 수리부엉이는 밤에 날갯짓 소리도 없이 기습합니다. 밤에 둥지 근처에 접근했다간 날카로운 발톱에 큰 상처를 입고, 잘못하면 눈을 다치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유독 번식을 일찍 시작하는 이유는 숲이 우거지기 전이라야 먹이를 사냥하기 쉽고, 새끼를 양육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3월부터 새끼를 부지런히 길러야 가을에 새끼를 완전히 독립시킬 수 있습니다. 생후 2주쯤 된 어린 새도 닭보다 큰 거대한 몸집으로 오리 한 마리쯤은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포식가입니다. 보통 2~3마리의 새끼를 기르는 수리부엉이의 부부는 번식기에는 새끼들의 먹이를 대느라고 밤 사냥에 전력을 소비합니다. 성장기의 새끼 한 마리가 하룻밤에 먹는 식사량은 들쥐를 기준 했을 때 5마리 이상은 먹어야 정상적인 성장을 한다고 조류학자들은 말합니다. 먹이가 부족해 굶주리는 새끼들은 먼저 부화된 놈이 동생을 죽이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어미도 이를 말리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지켜봅니다. 맹금류의 비정한 생존 경쟁이지요. 20여년 전 저도 파주의 수리부엉이를 기록하면서 동생을 죽인 현장을 목격했는데, 이때는 어미가 죽은 자식의 사체를 둥지 밖으로 매달고 가는 장면만 촬영했지요.
 
수리부엉이 암컷과 부화한 지 10일이 안 된 새끼가 둥지에 비치는 3월의 따듯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수리부엉이 성조는 적갈색의 깃털에 검은색 무늬가 섞여 있고, 가슴과 배에 세로 줄무늬가 있습니다. 다리도 털로 덮여 있으며 귀깃이 크고 길어 밤에 소리를 잘 듣습니다. 암컷이 '푸후~' 하고 울면 수컷이 '푸후응' 하고 응답하며 옥타브를 높여갑니다. 어린 새는 갓 부화 했을 때는 흰색이다가 잿빛으로 변하며, 둥지를 떠날 때는 어미와 같은 갈색 깃이 서서히 나타납니다. 사냥의 주무기인 갈고리 형태의 발톱은 웬만한 들짐승의 피부를 꿰뚫고 조는 힘이 강해 산토끼도 단숨에 절명시킵니다. 
 
수리부엉이는 숲속에서는 산토끼, 꿩, 다람쥐나 들쥐, 강가에서는 오리를 비롯한 크고 작은 물새를 사냥합니다. 농가의 허술한 닭장을 침입해 쑥대밭을 만들어놓기도 하지요. 옛 속담에 '부엉이집을 찾으면 횡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잡아 오는 산토끼, 오리를 인간이 가로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밤에 부엉이가 울면 그해 풍년이 든다며 부엉이를 매우 귀한 새로 취급했습니다. 특히 부엉이가 새끼를 3마리 이상 키우면, 그해는 대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부엉이가 주로 잡아먹는 동물이 들쥐이다 보니 부엉이가 많아질수록 농가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들쥐를 자연 소탕해 주는 셈입니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고루 분포하는 수리부엉이는 국제적 멸종위기 관심대상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재청과 환경부의 보호 감시를 받고 있답니다. 최근 들어 전국 각지에서 수리부엉이가 사람들 눈에 목격되고, 수리부엉이 사진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자주 등장합니다. 수리부엉이의 번식지가 곳곳에서 발견돼 이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 같지만 결코 아닙니다. 온 산하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은밀한 곳에 서식하던 수리부엉이가 사람들의 생활공간으로 밀려 나온 것이지요.
 
밤하늘의 최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의 생존 개체수는 자연 생태계 먹이사슬의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입니다. 수리부엉이가 서식하는 곳은 작은 동물들이 서식하는 환경 상태가 건강한 곳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연환경 조건이 예전에 비해 좋지는 않지만, 아직은 비교적 건강하다는 방증이지요. 그러나 더 이상 악화되기 전에 우리 후손들도 곳곳에서 밤의 황제 수리부엉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지켜나갈 때입니다.
 
글·사진= 김연수 생태칼럼리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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