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끈질긴 법적 싸움을 통해 국가배상 책임을 넓혀왔습니다. 한 차례 보상으로 모든 분쟁을 끝내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배상 이후에도 권리구제의 문을 열어두고 예측하지 못한 추가 피해까지 국가가 책임지도록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판례들을 되짚어 봤습니다.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보름여 앞둔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목포시 제2목포 신항만 세월호 거치소에 세워진 세월호 주변으로 노란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재, 세월호피해자지원법 ‘이의제기 금지조항’은 위반
헌법 제29조엔 국가배상권에 대해서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간 국가배상의 책임 범위는 각종 제한 규정에 묶여 좁게 해석됐던 게 사실입니다.
변화의 출발점은 2017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입니다. 당시 세월호피해지원법 시행령 15조는 세월호 참사 피해와 관련해 배상금 지급에 동의한 유가족에게 ‘세월호 참사에 관해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이에 유족들은 이의제기 금지 조항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요구 등 의사표현을 할 수 없도록 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2015년 6월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2017년 6월 헌재는 재판관 6대2 의견으로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헌재는 “세월호피해지원법에는 전혀 없는 표현을 시행령에서 임의로 추가한 것”이라며 “내용을 제한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최소한 청구인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어 “기본권 제한의 법률유보원칙에 위반해 법률의 근거 없이 대통령령으로 청구인들에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일체의 이의제기 금지 의무를 부담시켜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배상금을 받는 것이 진상규명이나 형사절차 참여 같은 권리까지 포기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진상규명 요구나 형사절차 참여 등은 배상금 수령과 상관없이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헌재는 배상금을 받을 경우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보는 세월호피해지원법 16조 자체는 유지했습니다. 헌재는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배상금 등을 지급받고도 다시 소송으로 다툴 수 있도록 한다면, 신속한 피해구제와 분쟁의 조기 종결 등 세월호피해지원법의 입법 목적은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집니다. 즉, 해당 조항으로 세월호 참사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동의해 배상금을 받았다면 더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윤길옥씨가 2021년 4월13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사 이후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심 “재판상 화해 성립”…2심 “후발손해는 별개”
하지만 8년 뒤 해당 조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진일보했습니다. 제주 지역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은 2015년 3월 배·보상금을 지급받았지만, 배·보상금을 받을 당시 예상된 치료 기간 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등 후유증이 지속되자 국가를 상대로 후유장애에 대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2021년 4월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2024년 7월 “원고들은 세월호피해지원법 제16조에 따라 피고(대한민국)와 사이에 세월호 사고로 인한 손해와 관련하여 재판상 화해가 성립했다”고 판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생존자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2심 재판부는 보상 당시에는 후유장애 기간을 3~5년으로 예상했지만, 그 이후에도 피해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즉, 배상 당시에 예측할 수 없었던 ‘후발 손해’가 발생했다면, 기존 화해의 효력만으로는 추가 청구를 차단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화해의 성립이 간주되는 효력 범위를 해석함에 있어 분쟁의 조기 종결이라는 수단적 가치에만 치우쳐 그 효력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볼 경우에는 피해자들이 세월호 참사로 입은 손해를 정당하게 배상받지 못하였음에도 소송을 통해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길이 폭넓게 차단된다”며 “이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배상과 보상을 통해 피해자로 하여금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세월호피해지원법의 입법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다”고 판시했습니다.
생존 피해자 측을 대리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그간 국가배상은 한 번 보상이 이뤄지면 분쟁이 종결되는 일회성 지원에 머물렀다”며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사고 당시 상태로만 평가할 수 없는 만큼, 이번 판례는 참사 이후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변화와 후유증까지 국가책임 범위에 포함시킨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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