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나온 곤줄박이 어린 새. 아직 세상이 낯설다. 스님 손바닥에 올라 안전한 숲속으로 돌아갔다. (사진=도연스님)
"곤줄아~" 철원과 포천을 잇는 지장산 자락에 도연암이 있습니다. 지장산은 소쩍새가 밤을 알리고, 파랑새가 여름을 물들이며, 붉은머리오목눈이가 관목 사이에 둥지를 틉니다. 새들의 지저귐이 가득한 숲이지요. 도연암의 도연 스님은 산새마을 자연학교 선생님이자 지장산의 숲과 계곡과 산새들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숲의 일원입니다.
지장산의 다양한 산새들 중에서도 스님과 각별한 사이가 된 새가 있습니다. 곤줄박이(varied tit, Parus varius)입니다. 스님이 곤줄박이를 부르거나 곤줄박이가 스스로 찾아와 스님을 부르기도 합니다. 나뭇가지 사이를 재빠르게 가르며 날아와 잣을 하나 집어 물고 바삐 사라지기도 하고, 어린 새를 기르느라 한창인 날에도 애벌레를 입에 문 채로 잠깐 들렀다 갑니다. 스님은 도연암을 찾는 새들과 잣과 호두 등 먹이를 나눕니다. 밥을 함께하는 사이를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도연암에는 식구가 많습니다. 곤줄박이,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참새, 흰눈썹황금새, 소쩍새, 파랑새, 솔부엉이, 고라니, 수달, 송사리 등 다양한 존재들이 스님과 동고동락합니다.
곤줄박이는 산과 숲, 공원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산새입니다. 이름에서 ‘곤’은 ‘검다’라는 뜻의 옛말 ‘곰’에서 왔고, ‘박이’는 일정한 장소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곤줄박이는 한곳에 터를 잡고 사계절 내내 살아가기 때문에 텃새라고도 합니다. 머리 위의 검은 깃과 뺨의 흰 무늬, 가슴 아래로 이어지는 주황 깃이 곤줄박이의 특징입니다. 약 13센티미터로 참새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몸집은 작지만 성격은 대담합니다. 사람 곁을 두려워하는 참새나 박새와는 달리 곤줄박이는 과감하게 다가와 주변을 살피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주로 곤충을 잡아먹고, 가을과 겨울에는 씨앗이나 열매를 찾아 먹습니다. 곤줄박이는 잣송이를 열심히 쪼아 잣을 꺼낸 뒤 겨울철에 언제라도 찾아 먹기 위해 땅에 묻어 두는 습성도 있습니다.
5월이면 곤줄박이의 일상은 한층 분주합니다. 육추(育雛)가 한창인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소(離巢)를 시작한 어린 새들도 있습니다. 이소는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는 일입니다. 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출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새들에게 이소는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지만 세상이 낯선 어린 녀석들에게는 가장 위태로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나무줄기에 앉은 곤줄박이가 주변을 살피고 있다.
아직 날갯짓에 서툰 몸으로 낮은 가지나 땅바닥에 주저앉은 어린 새를 고양이나 뱀이 노리기 때문입니다. 어치와 까마귀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황조롱이가 하늘을 맴돌며, 땅에는 족제비도 있습니다. 호시탐탐 먹잇감을 찾는 이들 또한 저마다의 삶을 사는 생명입니다. 이소란 그런 냉혹한 자연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일입니다. 둥지를 막 나온 어린 새들에게 그 만남은 곧 생사의 갈림길이 됩니다. 그 가운데에 스님도 있습니다. 스님은 산길을 걷다 흙바닥에 있는 어린 새를 마주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아직 잘 날지 못하는 곤줄박이 어린 새를 만나 손을 내밀었더니 겁도 없이 손 위에 올라앉았다고 합니다. 어린 새는 이 품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아는 걸까요.
안전한 풀숲으로 곤줄박이를 내려주었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30여년 동안 지장산에서 살고 있는 곤줄박이 가족들이 대대손손 "스님은 우리 식구야!"라는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지장산의 자연 속에서 살아온 스님과 산새들 사이에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돌봄이라고만 부르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 무언가를 도반(道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도반은 같은 길을 서로 도우며 함께 가는 벗입니다. 잣을 나누며, 서로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일상을 함께하는 곤줄박이와 스님의 관계가 꼭 그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연암은 자연의 도량(道場)이자 법당(法堂)입니다. 스님은 새의 습성을 헤아려 주변을 살피며 먹거리를 나누고, 곤줄박이는 그 모습을 친밀함의 신호로 받아들여 반갑게 찾아옵니다. 각기 다른 종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상대의 세계 안에 조금씩 들어온 것입니다. "곤줄아~" 스님이 휘파람을 불며 다시 부릅니다. 숲속 어딘가에서 작고 까만 눈이 스님을 향하며 휘리릭 화답합니다. "배배배"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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