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0번째를 맞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해상 훈련 환태평양훈련(RIMPAC)의 엠블럼. (사진=미국 해군)
2026년 환태평양훈련 림팩(RIMPAC·Rim of the Pacific Exercise)은 대한민국 해군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해군이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해상 연합훈련인 림팩에서 처음으로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Combined Task Force Maritime Component Commander) 임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훈련 참가를 넘어 대한민국 해군의 연합작전 지휘 능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림팩은 1971년 미국 해군 제3함대 주도로 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해상훈련이다. 냉전기에는 태평양 지역 공산권 해군 세력을 견제하는 성격이 강했지만, 오늘날에는 해상교통로(SLOC) 보호, 대잠전, 대공전, 미사일 방어, 인도적 재난구호(HADR), 해양안보 협력 등 복합 안보훈련으로 발전했다. 특히 림팩은 미국이 동맹 및 우방국 해군의 상호운용성과 연합작전 능력을 검증하는 ‘해양 안보 올림픽’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해군도 림팩을 통해 꾸준히 성장해 왔다. 한국은 1990년 처음 참가한 이후 초계함, 구축함, 잠수함, 해상초계기 등을 지속적으로 파견하며 연합작전 수행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초기에는 단순 참가국 수준이었지만, 점차 대잠전과 미사일 방어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잠수함과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참가 이후 한국 해군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필자가 2002년 장보고-I급 나대용함 함장으로 참가했을 당시에는 8개국 규모였으나, 2024년 림팩에는 29개국이 참가했고 한국 해군은 연합해군구성군사령부 부사령관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 사령관 임무 역시 이러한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림팩에서 다국적 연합해군을 지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수십 개국의 수상함·잠수함·항공기·해병대 전력이 동시에 움직이며, 각국의 교리·통신체계·작전 절차·교전규칙도 서로 다르다. 영어 기반의 연합작전 수행 능력은 물론, 고도의 지휘통제(C2) 체계 운용 능력과 실시간 상황판단 능력이 요구된다. 단순히 함정 수가 많다고 수행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라, 오랜 연합훈련 경험과 높은 수준의 작전 이해도를 갖춘 국가만 맡을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한국 해군에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 임무를 맡긴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는 미국이 한국 해군의 작전 수행 능력과 동맹 차원의 신뢰도를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한국 해군의 위상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과거 한국군은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안보 수혜국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해군은 미국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연합 전력을 직접 지휘하며 미국의 부담까지 분담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국제 안보 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안보 제공국(Security Provider)'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특히 30여 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림팩에는 대한민국 해군 제독이 연합 전력을 총지휘하고,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함도 참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조대왕함은 탄도미사일 탐지·추적 능력과 첨단 통합전투체계를 갖춘 한국형 차세대 전략 플랫폼이다. 이는 한국 해군이 연안 방어 수준을 넘어 원해(遠海) 기동과 연합 지휘 능력을 갖춘 '블루워터 네이비(Blue Water Navy)'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림팩 사령관 임무는 군사적 의미를 넘어 국가 위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경제력과 방산·조선 역량에서 세계적 수준에 오른 대한민국은 이제 국제 안보 분야에서도 책임과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국력은 단순한 GDP 규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동맹과 우방국으로부터 얼마나 신뢰받는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제독이 세계 최대 해상 연합훈련의 해군 작전을 지휘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강국으로서 보다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다음달 미국 하와이 인근 해상에서 진행될 올해 림팩은 단순한 군사훈련을 넘어, 대한민국 해군이 세계 해양안보 질서의 핵심 파트너로 도약했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상징적 무대가 될 것이다.
문근식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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