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2050 탄소중립 의제화에 따라 높아지는 글로벌 탄소 규제 장벽 등 철강업계에 탈탄소 전환 요구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학계에서는 이를 단순 생존의 위기가 아닌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탄소중립이 전 세계가 공통으로 마주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과 철강업계의 경쟁력 있는 제품 생산 노력 등을 통해 미래 저탄소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K-GX(한국형 녹색전환) 전략에서 철강산업을 핵심축으로 신시장 창출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입니다.
경북 포항시 철강 산업단지.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14일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올해 3분기 중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반도체 등 5대 탄소 다배출 업종의 탈탄소 전환과 재생에너지 보급을 아우르는 한국형 녹색 대전환(K-GX) 전략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형 에너지를 국가전략기술에 추가하고 2030년까지 태양광·풍력 중심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 수준으로 확대해 탈탄소 에너지 자립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K-GX 전략이 철강산업을 핵심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지난 5월 발간한 국가 정책 제안 ‘탄소중립의 산업·안보 전략화와 한국형 녹색전환’ 보고서는 K-GX 성공을 위한 핵심 우선 과제로 철강 중심 주력 제조업의 전환을 꼽았습니다. 보고서는 “철강은 제조업 중 최대 배출 업종이자 후방 파급효과가 큰 기초 소재 산업이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1차 대상이자 수소 공급 등 시스템 전환이 수반돼야 하는 난감축 업종이라는 점에서 K-GX 산업 전환의 대표 과제로 선정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고서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단기와 장기를 나누는 ‘투트랙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저탄소 원료 사용을 늘리고, 고효율 전기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기존 공정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해 즉각적인 탄소 감축 효과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후 장기적으로 기존의 석탄 기반 고로 체계를 수소환원제철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완전 전환하는 정교한 연착륙 시나리오가 작동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K-GX의 첫 단추, 왜 ‘철강’인가
탄소중립과 산업전환 이슈를 다뤄오며 해당 보고서 연구에 참여한 윤제용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K-GX 전략에서 특히 철강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성공 가능성’을 꼽고 있습니다. 윤 교수는 “모든 산업군에서 탈탄소 전환이 중요하지만, 제한된 리소스를 고려하면 우선적인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그런 점에서 철강산업은 가장 많은 탄소 배출 산업군인 까닭에 감축 효과가 큰 데다, 수소환원제철 등 기술 로드맵을 통해 자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라고 진단했습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오른쪽 첫번째)이 지난 1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K-GX 민관합동 추진단 출범식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한 K-GX의 성공 여부는 결국 ‘전력’에 달려 있어 전력 요금과 인프라 등에 대한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결국 탄소를 발생하지 않는 에너지원, 즉 무탄소 전력을 어느 정도의 양과 가격으로 공급할 것인가가 관건”이라면서 “신재생 에너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된 전력이 계통망을 통해 자유롭게 유통이 될 수 있는 구조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K-GX의 성공 열쇠는 단순히 기업들을 위해 전력 요금을 낮춰달라는 식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가가 ‘그린 소사이어티’ 구축이라는 목표를 세웠다면, 그에 걸맞게 인프라 전체를 바꾸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하고 관련 로드맵과 장기 공급 지원 계획을 기업들에게 투명하게 제시해 투자 가시성을 확보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철강산업 중심의 K-GX 전략을 바라보는 학계의 시선은 단순히 공급망 지원책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K-GX를 철강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신시장 창출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 과정에서 학계는 초기 시장 환경 구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저탄소 철강 제품이 기존 고로(용광로) 제품 대비 생산비용이 높은 구조인 만큼, 해당 제품이 적정한 가격을 인정받고 거래될 수 있는 제도적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윤 교수는 저탄소 철강 제품의 품질과 가격 등이 검증되지 않아 대규모 민간 수요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짚으며, “정부가 장기 로드맵과 공공 조달 등을 통해 수요를 뒷받침하는 등 정책적 마중물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초기 판로 구축과 정부의 장기적인 정책 일관성 등을 통해 저탄소 제품이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윤 교수의 설명입니다.
공공조달 마중물과 기업 노력 맞물려야
아울러 정부의 정책 지원 외에도 기업의 자구 노력이 이어져야 성공적인 탈탄소 전환과 성장의 기회가 다가올 것이라는 조언도 뒤따릅니다. 민 교수는 “재생에너지와 수소 등 고가의 원료를 투입해 저탄소 제품을 만드는 만큼, 고품질·고부가가치의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롯이 기업의 책임이자 역량”이라며 “전력과 수소를 얼마나 경제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부의 몫’과 그렇게 공급받은 에너지로 고품질의 저탄소 철강 제품을 생산해내는 ‘기업의 책임’이 맞물려 돌아갈 때 글로벌 신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철소에서 철강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공정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3회는 탄소중립과 관련한 해외 사례를 비교해 보고 이를 토대로 실질적인 탈탄소 전환의 실현 방안을 짚어봅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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