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홈플러스가 2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DIP) 확보로 회생절차 재개의 기회를 얻었지만, 우선변제권을 둘러싼 채권단 갈등은 심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선순위인 DIP 금융의 우선 변제가 보장되면서인데요. 이로 인해 중·후순위 채권자와 개인투자자의 회수는 더욱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고, 향후 관계인집회에서는 변제 순위를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이 한층 격화할 전망입니다.
2000억원 DIP 확보, 회생절차 재개 분수령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이날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폐지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를 제기했습니다. 지난해 3월4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와 재산보전처분, 포괄적 금지명령을 신청했고, 같은 날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지난해 12월29일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을 제출했으며, 당초 올해 3월4일까지였던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은 두 차례 연장(3월3일·4월30일) 끝에 이달 3일까지 미뤄졌습니다.
회생법원은 지난 3일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면서도 즉시항고 기한인 이날까지 2000억원 규모의 DIP 금융이 마련될 경우 폐지 결정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조건을 달아 회생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그동안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DIP 지원 방식을 두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는데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등이 양측에 조속한 합의를 촉구하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결국 지난 16일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2000억원에 대한 사재 출연과 연대보증 의사를 밝히자 메리츠금융도 같은 규모의 DIP 지원을 결정하며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자금 조달 조건을 달성하면서 홈플러스는 즉시항고를 통해 회생 가능성을 다시 판단받을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법원이 항고를 받아들이면 회생절차는 지난 3일 이전 상태로 복원됩니다. 홈플러스는 확보한 2000억원을 바탕으로 매장 운영을 정상화하고 핵심 점포 중심의 수익성을 회복한다는 계획입니다. MBK는 이를 토대로 잔존 사업에 대한 인수·합병(M&A)도 다시 추진할 방침입니다.
DIP 금융으로 단기 유동성 위기는 넘겼지만 실질적인 경영 정상화 실현은 미지수란 시각도 있습니다. 영업을 중단했던 매장의 정상 운영은 물론 소비자와 협력업체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원이 회생 재개를 승인하면 다시 경영에 돌입할 수 있겠지만, 한 번 문을 닫았던 매장을 다시 여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2000억원이 영업 재개에 충분한 규모인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소비자와 납품업체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최대주주가 회사를 반드시 정상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시항고 이후 절차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회사가 즉시항고를 제기하면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법원은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다시 심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제출했던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을 최근 확보한 DIP 금융 등 변경된 자금 조달 계획을 반영해 보완 제출해야 합니다. 이후 이르면 9월께 열릴 관계인집회에서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회생계획안에 대한 찬반을 결정하게 되며, 이 결과에 따라 홈플러스의 최종 회생 여부가 가려질 전망입니다.
(자료=채권자협의회 등)
채권단 변제순위 이해관계 대립
즉시항고로 회생 가능성은 되살렸지만, 홈플러스를 둘러싼 채권단 갈등은 본격적인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됩니다. 홈플러스 회생이 재개되더라도 기존 채권의 회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최대 채권자로 선순위 변제권을 가졌던 메리츠금융이 추가 지원한 신규 DIP 금융 몫까지 최우선 변제권을 확보하게 되면서 기존 채권자들과 회수 시기와 규모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됩니다. 향후 관계인집회 단계에서 변제 순위를 둘러싼 이해관계자 간 충돌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공적자금 성격으로 최우선 변제권을 확보한 DIP 금융은 큐리어스플러스의 600억원(금리 10%)과 메리츠금융의 2000억원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DIP 금융은 회생 기업의 상품 매입과 점포 운영 등 영업 정상화를 위한 신규 자금으로,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한 재원이 아닙니다. 결국 투입된 자금으로 영업이 정상화되고 매출이 회복돼야만 미지급 급여와 납품대금, 체납 세금, 기존 회생채권 등에 대한 변제가 가능해지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홈플러스의 단기 상환 부담이 회생 신청 이후 급격히 불어났다는 점입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선순위 담보대출과 후순위 담보대출, 자산유동화기업어음(P-CBO) 등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에 해당돼 모두 1년 이내 상환 대상인 유동성 장기차입금과 유동성 사채로 재분류됐습니다.
실제 홈플러스 감사보고서를 보면 유동성 장기차입금은 27기(2024년 3월~2025년 2월) 1666억6300만원에서 28기(2025년 3월~2026년 2월) 1조3151억6300만원으로 약 8배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유동성 사채도 559억5500만원에서 86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단기 상환해야 할 채무가 크게 증가하면서 회생 이후에도 유동성 부담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후순위 담보대출을 보유한 보험사와 가맹점 대금 정산 문제를 안고 있는 카드사 등 제2금융권 채권자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습니다. 홈플러스 전자단기사채(ABSTB·전단채)에 투자해 약 4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 역시 회수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향후 열릴 관계인집회에서는 김병주 회장이 제시한 전단채 개인투자자 대상 '10년 분할 상환안'을 비롯해 회생계획안 전반을 놓고 채권자 간 치열한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DIP 금융을 제공한 채권단과 기존 금융회사, 개인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만큼 회생계획안 통과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변제 순위를 둘러싼 논란은 기업회생 과정에서 항상 발생하는 문제"라며 "2000억원이 수혈된 이후에도 채권단 변제와 영업 정상화가 어떻게 이뤄질지가 계속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법적으로는 회생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지만 실질적으로 경영 정상화가 가능할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신규 자금을 투입한 채권자와 기존 금융회사, 카드사 등 다양한 채권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향후 조정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2000억원으로 단기 유동성 위기는 넘겼다고 하더라도 홈플러스의 대규모 단기부채는 계속 남아 있는 만큼 회생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사진=뉴시스)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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