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경희 정의연 이사장 "실용외교 위해 역사정의 포기할 수 없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이끌고 있는 정의기억연대 인터뷰
한국 법원선 배상 판결…한경희 "정부, 외교적 보호권 행사해야"
피해 생존자는 이제 5명…"일본에 '사죄와 배상' 이행 요구해야"
"피해자 없는 시대도 대비해야…기록·교육으로 역사 부정 대응"
2026-08-14 06:00:00 2026-08-14 06:00:00
[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8월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이튿날인 15일은 광복 제81주년입니다. 해방 후 8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일본을 배척하고만 지낼 수도 없습니다. 이에 광복 이후 역대 정권은 일본과 '불가근불가원'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정권 성향에 따라선 대일 정책에서 차별점을 두어 왔습니다. 이재명정부의 경우엔 '한·일 현안은 과거사 문제와 연계하지 않는다'는 투트랙 원칙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급변하는 경제·안보 질서 속에서 일본과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용외교를 이유로 역사 정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일본과의 협력과 역사 정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지금도 역사를 부정하는 태도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끝난 과거사'가 아니다"라며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책임 이행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정의연 사무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습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다음은 한경희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2021년과 2023년, 2025년 한국 법원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잇따라 인정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일본과 미국 법원 등에서 제대로 된 사법적 판단을 받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판결들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한국 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국제연합(UN) 등 국제기구가 일본 정부의 책임과 배상을 요구해 왔던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간 성과입니다. 지금까지는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는 차원이었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피해자들에겐 '구속력 있는 법적 권리'가 비로소 생겼습니다. 아울러 일본 정부엔 '법에 따른 배상을 이행해야 할 엄중한 책임'이 명확히 요구된 겁니다. 
 
이제 이 권리가 판결문에만 머물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적극 행사해야 합니다. 외교적 보호권이란 자국민이 타국에서 법적 권리를 실현하기 어려울 때 자국 정부가 외교적·정책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보호해 주는 걸 말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어떤 외교적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지난 1년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상대로 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도 이 문제가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았고, 여섯 차례 이어진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공식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한일 합의로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2015년 합의로 문제가 끝난 게 아니며,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추가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경제·안보 질서가 변하는 상황에선 일본과 협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용외교를 위해 역사 정의를 포기할 순 없습니다. 경제와 실용 역시 민주주의와 신뢰라는 토대 위에서만 지속 가능합니다. 일본과의 협력과 역사 정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과 협력하되 정부로서의 책무도 다해야 합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과정은 오늘날 전시 성폭력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기준을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예전엔 전시 성폭력을 전쟁 중 일어날 수 있는 부수적 문제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문제 제기를 계기로, 전시 성폭력은 국제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인권 범죄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해국의 책임을 분명히 묻고 피해자의 권리를 회복하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시 성폭력에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의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현재 발생하는 문제에도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한일 간의 과거사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 입구에 단체 현판이 걸려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5분만 살아 계십니다. 피해자들의 직접 증언을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되면 어떻게 역사를 기억해야 하나요. 
 
피해자가 살아 계신 지금도 역사를 부정하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이런 움직임은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기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역사적 진실을 보호하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기념관과 박물관, 아카이브뿐 아니라 기록의 보존과 연구, 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당시의 피해 사실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증언과 활동 역사, 나아가 피해자들과 연대했던 시민들의 활동, 아시아 피해자들과 함께한 연대의 과정까지 모두 기록해야 합니다. 증언자가 없는 시대엔 기록만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이런 기록을 보존·연구하고 지속 가능한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도 개정됐습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행태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최근 수요시위 현장 인근에서 역사를 부정하고 위안부를 폄훼하는 활동을 벌인 인물이 구속됐습니다. 수사기관은 이 인물에게 개정된 피해자 보호법이 아니라 기존 법률을 적용했습니다. 법 개정 전에도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기존 법률로도 충분히 엄정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결국 법을 개정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적극적인 법 집행 의지를 갖고 운용하느냐가 핵심입니다. 개정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으로 확산되고 있는 모욕과 부정 등에 대한 대응 체계도 필요합니다. 허위사실이나 왜곡된 정보가 알고리즘을 통해 반복적으로 퍼지지 않도록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피해자가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도 만들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피해자분들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 많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하고 그분들의 권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다는 말입니다. 완벽한 해결을 바란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습니다. 다만 피해자들이 한 분이라도 살아 계실 때 이 문제가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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