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부장판사 김형두)의 심리로 열린 보석청구 심문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자신의 심경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원고도 없는, 약 40분에 걸친 긴 진술이었다.
곽 교육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선거과정에서 헌신으로 도와준 오랜 벗들의 어긋난 충정을 단속 못해 벌어진 일"이라며 "박 교수 측과의 합의를 위임하거나 지시, 묵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은 불구속수사 원칙의 예외가 될 정도로 사악하고 간교한 사람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곽 교육감 법정진술의 전문.
"이런 모습으로 현직 교육감이 법정에 앉아 있어 송구스럽습니다. 저를 아껴주고 지지해주는 분들에게 누를 끼치고 서울시 교육행정의 혁신을 지체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교육가족들에게 혼란과 충격을 줬습니다.
◇"오랜 벗들 빗나간 충정 예방치 못한 불찰 있어"
오랜 벗들의 빗나간 충정을 예방하지 못한 불찰이 있었고, 그로 인해 큰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0월7일 보석허가에 반대하는 검찰사유서를 봤는데 저를 아주 간교하고 치밀한 철면피로 묘사했습니다. 또 약속을 깔아뭉개고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거짓말쟁이로 묘사했습니다. 이런 검찰의 태도는 구속영장을 청구한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믿는 신앙 안에서 최후에 심판을 받을 때 적어도 교활하고 간교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검찰은 사람을 의심할 법적인 특권을 받았지만 그것은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범위 내로 제한되는 것이지 진실을 왜곡할 특권은 없습니다.
검찰은 제가 박명기 교수에게 포괄적인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말한 것은 부조차원의 지원이었습니다. '박 교수가 극도의 빈곤에 빠진다면 진영에서 가만 있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나라도 사람을 움직이겠다'는 취지에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단일화 과정에서 선거비용 보전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 떠오르는 것은 첫째 단일화 시점 전까지의 매몰비용은 분명히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단일화 시점 이후의 투입비용은 협력적으로 풀어갈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선거를 해보기도 전에 맺은 각종 계약들, 이것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로는 아주 드물게, 진영과 사퇴후보간에는 일정한 부조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입니다.
광역선거의 경우, 매우 큰 돈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질서 있는 진영이나 정당 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박 교수는 경선에서 뛰쳐나간 뒤 2~3일이면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해야 했고, 그 전에 투입한 엄청난 금액 때문에 경제적 파탄이 올 수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일입니다.
◇"진영의 대의로 궁핍에 빠진다면 나라도 나서야"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진영의 대의로 말미암은 단일화로 박 교수가 궁핍에 빠진다면 나라도 나서야겠다는 부조의 의미였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일입니다. 진영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라도 사람을 움직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찰은 이것을 박 교수가 경제적 어려움이 없도록 제가 포괄적으로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또 이모씨와 양모씨가 5월19일자로 구두합의한 것, 저는 이것을 해프닝이라고 부릅니다만, 이를 위임하거나 지시하거나 승인한 적이 결코 저는 없습니다. 5개월 동안 새까맣게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월19일에 단일화 기자회견을 한 것입니다. 그 직전에 4대 원로를 모신 자리에서 박교수에게 울먹이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뒷돈을 주는 단일화였던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책연대를 하자는 제의에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뒷돈 거래가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면 거절했을 것입니다. 돈을 주기로 한 사람을 왜 혹처럼 붙이고 다녔겠습니까?
단일화 과정에서 박 교수의 심복인 김모씨가 이권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녹취록에도 나와있습니다. 저는 일언지하에 엄중하게 꾸짖었습니다. 이후 박 교수가 김씨를 채용해달라고, 예를 들어 비서실 같은 곳에 채용해달라고 청해왔지만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제가 약점이 있었다면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을 겁니다.
녹취록을 들어보니, 7월 말 박 교수가 찾아와서 언성을 높인 적이 있었습니다. 오해가 쌓이고 그래서 정말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 교수가 정책연대가 잘 안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는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고, 박 교수는 그 길로 뛰쳐나갔습니다.
10월 하순에 이 사실(구두합의가 있었다는)을 확인하게 됐고, 그 이후 이해할 수 없던 박 교수의 행동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래서 (합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제3자인 강모 교수, 김 모 교수에게 해결을 부탁한 것입니다.
◇박교수, "진보의 탈을 쓴 위선자가 벌이는 희대의 사기극"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11월8일 박 교수를 최 모교수와 식사차 같이 만났는데 그 때 박 교수가 저더러 '진보의 탈을 쓴 위선자가 벌이는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하길래 맞서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박 교수가 식사 도중 나가버렸습니다.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렇게 호통을 치지 못했을 겁니다.
검찰조서 전체를 2번 읽어보니까 녹취록이 무슨 내용인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제게 매우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씨, 김씨, 박씨 등이 일대 일로 각각 만난 이씨와 최씨, 김씨는 '곽 교육감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얘기했습니다. 거짓말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양씨가 '곽교육감에게 말 안했다고 잡아떼고 우긴다'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생생히 녹취되어 있습니다.
나는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2억원을 줬다고 말 했습니다. 그 전까지 검찰에서 흘러나오거나 언론에서 보도된 금액은 1억3000만원까지 나왔습니다. 이것이 사퇴의 대가(약속이행)인지 부조인지 문제가 됐습니다. 이 관계의 단절을 위해 합의과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들에게 해결을 부탁한 것입니다.
단일화 후보와 진영, 다른 쪽 후보에 대한 부조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당시 부조요건이 충족됐다고 생각해서 2억원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사건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금으로 2억원을 마련한 것입니다.
◇"부조요건 충족됐다고 보고 2억원 지원"
그 과정에서 가족에게도 못할 짓을 했습니다. 박 교수도 자신이 농락당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저로서는 어려운 부조를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9월 말 검찰조서를 받아본 이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빗나간 충정에 의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구차한 변명인 것 같아서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정말 친구들을 단속 못한 벌로 구속돼 있으라면, 서울시민과 가족에게 누를 끼치고, 서울교육혁신을 지체한 벌로 0.76평 밖에 안되는 방에 있으라면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스물여섯번에 걸쳐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였지만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아무리 생각해도 구속수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혼자 ‘10문10답’ 또 ‘오해와 진실’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는데 ‘10문10답’은 보석허가청구에 변호사가 첨부했습니다.
검찰은 저를 음흉하고 간교한 크레믈린 같은 사람이라고 묘사하지만 저는 전혀 반대의 사람입니다. 투명하고, 솔직한 사람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자고 외치며 산 사람입니다.
저는 합의를 지시하고 용인하거나 승인하고, 추인하고도 뭉개는 그런 간악한 철면피가 아닙니다.
수사과정에서도 저 혼자 살겠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적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입을 맞춘 사실도 없습니다.
검찰 주장처럼 그런 사람이라면, 왜 공소시효가 지나는 시점에서 선의의 부조를 했다는 말을 꺼냈겠습니까. 법리적 논쟁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반드시, 불구속재판의 예외가 될 만큼 제가 사악하고 간교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면서 말을 마치겠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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