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은정기자] 유럽발 위기가 미국까지 밀려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유로존 부채위기로 인한 미국 은행권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자, 뉴욕증시는 급격히 낙폭을 늘렸다.
최근 미국의 경제지표가 호조세를 보이며 한숨을 돌리기 무섭게, 미국 은행권에 대한 우려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 신용평가사, 美은행권 위험성 잇따라 경고
이날 피치는 "유럽의 부채 위기가 적절한 시기에 해소되지 못하면 미국 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이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는 "미국 금융권에 대한 등급 전망은 '안정적'을 유지하고 있다”며 "은행들의 신용등급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자본확충 등으로 펀더멘털은 개선된 상태
"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영향이 커지고 있어 향후 전망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미국 은행들로 위기가 전염될 것을 우려했다.
피치는 "미국 은행들이 지난해부터 유럽 시장에 대한 직접 투자 비중을 줄여왔지만, 유럽의 부채 위기는 여전히 미국 은행들에 위협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머니마켓펀드(MMF)는 유럽에 대한 익스포저를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10월말 현재 미국 MMF의 유럽은행에 대한 단기 대출규모는 2180억달러로 나타났다. 지난 8월말 대출 규모 2840억달러에 비해 2개월만에 660억달러 줄어든 셈이다.
무디스도 유럽 위기 인해 미국 경제에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리먼 사태 당시처럼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면서 기업과 개인이 자금난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는 것.
스티븐 헤스 무디스 애널리스트는 "이탈리아가 포함되면서 위기가 더 악화된다면 미국 금융 시스템이 갑작스러운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미국 은행, 유럽 익스포저 얼마나?
최근 유로존 재정불량국에 대한 익스포저가 컸던 선물중개사 MF글로벌의 파산이 월가의 위기감을 고조시키자, 미국 대형은행들은 그간 감추기에 급급했던 유로존 익스포저를 공개했다.
최근 시장 분위기가 월가 금융기관의 재무제표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유로존 위기가 월가에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에 주가가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위기에 처한 5개국에 대한 익스포저액은 씨티그룹이 257억달러, JP모건체이스가 203억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146억달러로 가장 많았고 웰스파고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는 25~35억달러 수준이었다.
다만, 이들은 헤징을 통해 총 익스포저액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순익스포저액은 씨티그룹은 163억달러, JP모건체이스는 151억달러, 뱅크오브라메리카는 130억달러로 집계됐고,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역시 총 익스포저액의 32%와 63%를 헤징한 것으로 나타났다.
헤징은 성공하면 그만큼 익스포저를 줄일수 실패하면 손실을 봐야 할 금액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미국 대형은행들이 헤징수단으로 선호하는 크레딧디폴트스왑(CDS)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존 피수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순익스포저는 그리 도움이 안 된다"며 "거래 상대방에 대한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CDS로 헤지했다 해도 채무자가 디폴트됐을 때 CDS 계약을 통해 원리금을 지급해주기로 약속했던 거래 상대방이 덩달아 위기에 빠지면 순익스포저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프랑스 익스포저 규모 1880억달러 추산
유럽 비관론은 남유럽 국가들을 넘어 프랑스에까지 다다르고 있다. 10년물 프랑스 국채 금리도 급등하면서 독일 국채 금리와 프랑스 국채 금리 스프레드는 유로 도입 이후 최고 수준까지 확대됐다.
문제는 미국 대형은행들의 프랑스에 대한 익스포저는 총 1880억달러 규모로 5개 위기국을 합친 익스포저 규모의 2배를 넘는다는 것이다.
이중 프랑스 은행권에 대한 익스포저 규모는 1140억달러에 달한다. 프랑스 은행들은 위기국들의 익스포저가 상당해 큰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 이에 BNP파리바와 소시에떼제네랄 등은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에 대한 익스포저 규모는 2250억달러로 더 큰 것으로 추산됐다.
유로존 위기가 대형국가로 확산될 경우 미국 은행들의 익스포저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미국 은행 시스템과 유럽이 독립적이라는 생각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라며 "유럽 재정적자 위기 여파를 과소평가하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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