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현진기자] "후보 단일화 합의 당시 금전 지급 약속을 곽노현 교육감(57)은 몰랐다. 곽 교육감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53)에게 '선의'라며 건넨 2억원은 대가성이 있었다"
곽노현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의 판단을 요약하면 이같이 정리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19일 후보 단일화 대가로 상대 후보로 출마했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과 함께 직위를 제공한 혐의 등(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곽 교육감에게 벌금 3천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단을 쟁점별로 나누어 살펴봤다.
◇곽 교육감, 후보 단일화 당시 금전 지급 약속 알았나?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당시 금전 지급 약속이 있었는지 여부를 알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선거 당시 곽 후보측 선거캠프 이모씨와 최모씨가 박 교수에게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7억원을 주기로 하는 합의안을 도출한 후, 곽 교육감에게 직접 보고해 최종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직접 증거는 전혀 없으며, 정황사실과 공소사실의 연결상태 역시 긴밀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그 이유로 회계책임자인 이씨가 후보자 매수 범행으로 3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선거 캠프관계자의 범죄로 인해 곽 교육감의 당선이 무효가 되는데도 곽 교육감이 박 교수를 달래거나 진정시키지 않고 박 교수와 대립을 거듭했던 사실을 꼽았다.
곽 교육감이 금전 지급을 조건으로 한 단일화 합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박 교수가 이 사실을 외부에 폭로하지 않도록 박 교수를 달래거나 진정시켰어야 했는데도 박 교수와 인사문제 등으로 대립한 점이 상식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외에도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지난 2010년 5월 19일 오전 한 시민사회 인사로부터 후보사퇴대가로 3억5000만원을 지급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이날 오후에 5억원을 지급하자는 합의를 승낙할 리는 없다는 점을 들어 곽 교육감이 금전 지급 약속을 알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2억원의 대가성은 인정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지급한 2억원에 대해서는 대가성을 인정해 유죄로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박 교수와 곽 교육감이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처음 만났고 돈을 지급받기로 할 때까지 단 둘이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둘 사이가 친밀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선의로 2억원을 내놓을 만큼 곽 교육감과 박 교수의 사이가 돈독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곽 교육감은 박 교수의 사퇴행위로 '단일 후보'가 되는 이익을 었었다"면서 "곽 교육감이 단일 후보가 된 것이 교육감 당선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제공한 2억원에 대해서도 "사회 통념상 의례적인 범위를 훨씬 뛰어넘었다"며 "곽 교육감 스스로도 당선되지 않았으면 모금에 동참해 100만원 정도만 내고 말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선의로 제공하는 돈 치고는 2억원이라는 금액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인 것이다.
◇"곽 교육감도 대가성 인식이 있었다"
재판부는 검찰에 기소된 곽 교육감과 박 교수, 돈을 전달한 강경선 교수 등 피고인 모두에게 대가성의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박 교수는 일관되게 자신이 받은 돈이 곽 교육감이 주는 돈인 줄 몰랐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강 교수가 곽 교육감과 친밀했다는 점을 박 교수도 잘 아는 만큼, 강 교수가 전달한 돈이 곽 교육감의 돈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또 "강 교수가 박 교수에게 '맡긴 돈 같이 이야기하지 마시라'고 말한 것은 박 교수의 태도가 '선의로 제공하는 무상의 성격을 띈 거액의 돈'을 지급받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음을 입증해주는 사실"이라며 강 교수도 대가성의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박 교수가 강 교수에게 '3억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 그 중 2억원만 제공했지만 여전히 거액인 점, 곽 교육감이 단일 후보가 되는 이익을 누리지 않았으면 주지 않았을 규모의 금액인 점 등을 들어 곽 교육감도 대가성의 인식이 있었다고 보았다.
◇재판부의 결론은?
재판부는 "대가 관계가 인정되고 대가성의 인식도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이상, 이 사건 법률조항이 금지한 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곽 교육감의 행위가 '이미 사퇴하고 난 공직후보에게 대가를 지급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규정의 입법목적'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이번 사안처럼 향후 선거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즉 사전에 후보사퇴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기로 약속해놓고 공소시효 등과 같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지급하는 경우, 후보자 매수죄로 처벌하기 힘들어진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방식으로 후보자 매수를 시도할 경우 처벌근거가 사라져 돈으로 표를 사는 행위를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때문에 무죄를 선고하기는 힘들었다는 얘기다.
다만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서울교육발전 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제공했다는 혐의에 대해 "정상적인 호선 절차를 거쳐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만큼 곽 교육감이 부위원장 직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며 무죄를 인정했다.
이같은 판단에 따라 재판부는 곽 교육감에 대해 "교육감으로서 선거문화를 타락시켰다"며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형이 확정되면 곽 교육감의 교육감 당선은 무효가 되며, 동시에 국가로부터 선거비용으로 보전 받은 30여억원을 반납해야한다.
박 교수에 대해서는 "사전부터 금품 수수를 합의하고 지속적으로 거액을 요구해 중형 선고를 피할 수 없다"며 징역 3년의 실형과 추징금 2억원을 선고했다.
강 교수에 대해서는 "곽 교육감의 범행을 적극 권유해 엄벌이 필요하다"며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교수의 형과 곽 교육감, 강 교수의 형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후보 단일화 당시 후보직의 매수와 매도행위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따라 책임의 경중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박 교수의 경우 참모들의 후보 단일화 합의 과정에서부터 금품 수수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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