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심사제 1년..우회상장 '유명무실' 논쟁
2012-02-07 15:28:58 2012-02-07 15:29:07
[뉴스토마토 김소연기자] 지난해 초 도입된 우회상장 질적심사제에 대해 시장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함량 미달 기업들의 상장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 평가와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맞서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1월1일, 우회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들의 부실화 논란이 지속됨에 따라 우회상장시 질적심사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이 담긴 상장규정 시행세칙을 도입했다.
 
◇우회상장 질적심사제 도입 1년..신규 우회상장 0건 
 
우회상장은 장외기업이 증권거래소나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기업과의 합병을 통해 상장을 위한 심사나 공모주청약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상장요건이 되지 않는 기업이 '뒷문'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영어로는 'Backdoor Listing'(뒷문 상장)이라고도 한다.
 
한국거래소가 우회상장기업에 칼을 빼들게 된 데는 '네오세미테크' 영향이 가장 컸다.
 
지난 2009년 우회상장으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네오세미테크'는 한 때 지식경제부 선정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에 이름을 올릴 만큼 우량 기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상장 5개월 여만에 분식회계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퇴출의 길로 들어섰다.
 
네오세미테크로 인해 개인투자자의 피해가 막대해지자 '뒷문 입성'을 노리는 기업들을 감시하기 위한 질적심사위원회가 설립됐다. 
 
우회상장시 기존 양적 요건 뿐만이 아닌, 질적 요건까지 심사하기로 한 것이다.
 
질적심사제 도입 1년여가 지난 현재, 우회상장 기업은 전무하다.
 
◇"함량 미달 기업 걸러내기 위해 '질적심사제' 필요"
 
질적심사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과거 사례를 살펴볼때 우회상장 심사를 강화하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함량 미달 기업들이 양적인 요건만 통과해 합법적 자본시장에 들어옴으로써 투자자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미리 막는 것이 낫다는 논리다.
 
기존 우회상장 제도 하에서는 자본잠식순이익, 감사의견 등 기본적인 양적 요건만 충족하면 됐다.
 
따라서 매출처의 지속성, 수익원 전망이나 경영진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장 당시에만 흑자였다가 이후에 적자로 돌아서는 기업도 다수였고 이 중 상장폐지 기업도 속출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우회상장 기업 135개사 중 지난 2일까지 상장폐지된 기업은 32개사로 전체의 23.7%에 달했다.
 
분식회계를 자행하고도 우량기업의 탈을 쓰고 있었던 '네오세미테크' 사례를 굳이 꼽지 않아도 증시 인기테마인 제대혈 관련주 '히스토스템'과 제4이동통신주였던 '제이콤' 등많은 우회상장 기업들이 투자자의 관심을 고스란히 피해로 돌려줬다.
 
또 스팩이라는 우회상장 대체제가 등장했기 때문에 굳이 우회상장제도를 느슨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 우회상장은 상장을 위한 껍데기(쉘)로 쓰는 기업이 불투명했는데 스팩은 쉘이 자금만 있는 클린컴퍼니"라며 "스팩과 실질심사 제도를 통해 기업들의 투명성이 요구되면서 앞으로 부실기업들이 뒷문으로 들어오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나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의 경우 이미 우회상장시 정식 IPO기업과 마찬가지로 질적 요건을 철저하게 심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함량 미달 기업들이 우회상장으로 런던증권거래소(LSE) 대표지수인 FTSE 100지수 등에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우회상장제 유명무실화..시도조차 안한다"
 
하지만 질적 심사제가 시행된 이후 1년 동안 우회상장 기업이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볼때, 제도가 너무 엄격해 우회상장제도의 장점을 못살리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셀트리온(068270), 드래곤플라이(030350), 게임하이(041140) 등 우회상장한 곳 중에서도 성장성이 높은 기업 역시 많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시장 시총 1위 기업인 셀트리온도 직상장에 2번이나 실패했다"며 "당시 셀트리온은 3년 평균 매출액은 맞췄지만 한해에 매출액이 쏠려 지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상장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심사에서는 성장성보다 과거 데이터를 중요시한다"며 "질적 심사를 받았으면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성장성을 인정받았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까다로워진 제도 때문에 애초에 기업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증권사 IPO 담당자는 "질적 심사제가 시행되면서 지난해 우회상장 자체를 시도한 기업이 아예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와 관련 "우리나라는 질적심사제도 도입을 통해 이제서야 해외 수준에 맞춘 것"이라며 "우회상장을 M&A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통상적인 IPO나 스팩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회상장 건수가 없으니까 잘못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질적심사제도는 괜찮은 기업들을 상장 못하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며 "합병도 좋지만 상장할 거면 다른 곳이랑 똑같은 요건을 갖추라는 기본적인 요구"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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