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손지연기자] #1 대형마트에 입점한 한 생활소비재 업체는 얼마 전 전단지와 미끼상품 품목을 대형마트측로부터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내용은 해당 품목을 900원에 맞춰서 1만개 물량을 준비하라는 것. 그러나 해당 입점 업체는 물량이 부족해 마트측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해 벌금을 내야했다.
#2 면세점에 입점한 한 브랜드는 면세점 측으로부터 기내 잡지와 비행기 좌석스크린에 광고게재를 요구받았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거절했다. 그러자 면세점측은 입점 철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 입점 업체에 계속해서 압박을 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업계에 만연한 불공정 행위에 칼을 빼들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한 불공정 사례 발표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이에 따라 중소업체들이 백화점 외에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10일 "비공개 납품업체 간담회를 꾸준히 진행해 불공정 사례를 수집중"이라며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공정위는 지난달부터 유통 분야 8300여개 중소협력업체와 '핫라인'을 가동해왔다.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중소협력업체가 신원 노출과 보복을 우려해 제보를 꺼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관계자는 "백화점은 유통업자가 아니라 자릿세를 받는 부동산 임대업자다. 예전에는 삼화, 미도파, 지방백화점 등 백화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대형백화점 위주의 과점구조라 이들의 횡포가 많다"며 "이런 식이라면 백화점이 도·소매업종으로 등록해서 세금을 적게 낼 것이 아니라 부동산 임대업으로 등록해야 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대형유통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유통업체들은 공정위의 이 같은 인식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몇 가지 사례 발표로 현재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통구조는 단기간에 시정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불공정 사례 발표는 대형유통업계에 경고성 시그널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
공정위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은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공정위의 이 같은 짧은생각(?)은 유통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매출에 따른 판매수수료를 받는 백화점 입장에서는 경쟁논리에 따라 매출이 높은 입점업체를 우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중소입점업체들은 대형유통업자로부터 좋은 자리를 명분으로 지나친 요구를 받는 경우도 있다.
매출대비율(자사 대비 경쟁사의 매출비중)이 부진한 납품업체에게는 할인행사를 진행하도록 하거나 경쟁 백화점에서 할인행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한 사례도 있다.
백화점이 중소업체보다 교섭력이 크기 때문에 시장경제 논리에서 둘 사이의 벌어지는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
한 유통 전문가는 "업체들이 백화점의 횡포를 알면서도 굳이 입점하려는 이유는 많은 고객들이 백화점을 찾기 때문"이라며 "굳이 백화점 입점을 하지 않아도 장사를 잘할 수 있는 업체는 백화점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화점이 입점업체들에게 장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는 유통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정부에서 근본적으로 유통 생태계를 건전하게 복원시키려면 백화점 외에도 중소업체들이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만드는데 힘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정부가 불공정 사례를 발표해 대형유통점에 경고 시그널을 줄 수는 있겠지만 이런 단기적인 조치보다는 대형유통점이 아닌 또다른 플랫폼을 조성해주거나 납품 유통경로 내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등의 정책적 도움을 줘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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