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최근 유럽 재정위기와 중동정세 변화에 따른 유가불안 등으로 기관들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시로 수정, 발표하면서 성장률 전망에 대한 회의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국제기구나 국책연구기관 등 주요 기관의 경우 성장률 전망치를 발표 때마다 주식시장이 흔들리는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전망과 실제 성장률이 달라질 경우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8일 기획재정부와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정부를 포함한 주요 기관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중반 유럽재정위기에도 4%대의 성장률을 기대했던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은 연말이 되자 재정위기의 여파가 지속될 수 있다며 3%대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재정부는 지난해 9월 올 성장률을 4.5%로 내다봤지만 지난해 12월에는 3.7%로 수정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비슷한 기간 4.3%에서 3.8%로 전망치를 수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연구소들이 당초부터 3%대의 낮은 성장을 예측한 것에 비해 변화가 적지 않은 셈이다.
전망을 대폭 수정한 것은 해외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9월 4.4%에서 최근 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5월 4.5%에서 3.8%로,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지난해 9월 4.3%에서 0.9%포인트나 내린 3.4%로 전망치를 크게 수정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그때 그때 반영해 새로운 분석을 내 놓는다고는 하지만, 다수의 기관들이 쏟아내는 수정 전망치에 시장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연구기관들이 나름의 근거를 갖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겠지만, 방법론이나 모형, 조사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더욱 세심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기관들의 성장전망이 들쭉날쭉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금융위기 직후 0.3%의 성장률로 마이너스 성장을 겨우 면한 2009년의 경우 당초 정부는 2008년 말에 무려 4%성장을 외치다가 2009년 상반기에 –2%로 대폭 하향조정, 하반기에는 0~1%사이로 예측을 수정했다.
한국은행도 2009년 성장률에 대해 2008년 12월에는 2% 성장을 기대했으나 상반기에 –2.4%로 수정했고, KDI도 당초 3.3% 전망에서 –2.3%로 큰 폭으로 전망을 수정했다. IMF는 2.0%에서 –4.0%까지 내려 충격을 줬다가 그해 하반기에는 –1%로 슬쩍 전망치를 재수정했다.
KDI의 경우 과거 2003년 경제전망치를 1년여만에 세차례 수정해 당초보다 절반이하로 낮은 성장률 전망을 내놓기도 했고, 같은 시기 한국은행은 4개월만에 두 번이나 성장률을 하향조정했다.
예측은 빗나갈 수 있지만, 주요 기관들의 잘못된 예측이 정책판단 착오로 이어진다는 점은 문제다. 한국은행의 경제전망은 통화정책의 기반이 되고, 국책연구기관인 KDI의 경제전망은 기획재정부 등 정부당국자의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현오석 KDI원장은 “경제전망은 정부보다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 전망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망이 틀린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관들이 스스로 발표한 성장전망에 대해 딱히 책임을 진적은 없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성장전망에 대한 책임요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책임질 방법도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 부분은 언론이나 정보활용자들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장률 전망치라는 수치의 무용론에 정보제공자이자 정보활용자의 한 축인 정부도 공감하고 있다. 수시로 변화하는 성장전망의 수치에 초점을 두지 말고, 기관들의 평가가 왜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두고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들어 더욱 급변하는 세계경제상황에서 성장률 전망이라는 수치에 포인트를 주면 판단을 흐릴 수 있다”며 “기관마다 비관적으로 보거나 낙관적으로 보는 성향이 구분될 수 있는데, 왜 낮게 보는지, 왜 높게 보는지 그 판단근거를 따져서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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