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보기를 줄테니 답하세요. 1번 반대한다, 2번 비슷하다, 3번 잘 모르겠다. 어떤 입장인가. 다른 소리하지 말고 보기에서 고르세요"
퀴즈프로그램이나 개그콘서트에서 나온 대사가 아니다.
지난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민주통합당 안민석 의원이 정부의 예산결산보고를 위해 출석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다그치는 모습은 회의를 지켜보던 많은 이들을 당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발단은 이날 전국대학총학생회 토론회를 찾아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고 공약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발언이었다.
민감한 정치문제를 피하려는 장관도 안타까웠지만, 어떻게든 그 답변을 정치화하려는 의원의 말자르기도 도를 넘었다. 급기야 "자꾸 말을 끊으면서 왜 굳이 보기중에 답변을 고르라고 하는가"라며 박 장관이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출범한 19대 국회, 그리고 그 중 경제정책과 예산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상임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8대에 이서 19대 국회에서도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의 보좌진을 맡게 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국회에는 기획재정위에 경제전문가들이 너무 없다"며 "정책질의의 질 저하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19대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우려는 곧바로 현실화된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비롯해, 여당 대선후보경선에 참여한 김태호 의원이 기획재정위에 배정됐고, 야당쪽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후보가 기획재정위에 배정돼 주목받고 있다.
26명의 기획재정위 소속의원들 중에서 경제분야 경력을 보유한 의원이 다섯손가락에 꼽힐정도라는 점도 눈에 띈다.
김태호 의원은 서울대 교육학 박사출신이며, 문재인 의원은 변호사에 참여정부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현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참여정부 청와대 언론비서관을 지냈다.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은 검사출신이다. 환경법 박사를 보유한 이 의원은 한나라당시절 4대강 TF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당내문제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김재연 의원은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반값등록금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물론 경제부처의 정책을 감시해야할 상임위라고 해서 경제분야 전문가들로만 의원들을 구성할수는 없다. 그러나 의원들의 구성변화는 정책질의를 보좌진에 의존할 수 밖에 없거나 회의진행을 정책보다는 정치에 쏠릴 수밖에 없게 한다.
이미 이번 19대 국회 출범이후 임시국회에서는 "의원님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하고 장관이 질문 자체의 잘못을 꼬집으면, 의원은 "자료를 제출해주세요"라고 얼버부리며 질의를 마치는 상황이 종종 연출됐다.
특히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책대결보다는 선거위주의 정치대결이 상임위 회의장을 뒤덮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기획재정위는 핵심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국세청과 관세청 등 국세징수기관까지 폭넓은 정부기관의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대선경선으로 회의장에 얼굴조차 비추지 못하는 정치거물들이 자리한 상임위가 올 가을 얼마나 제대로 된 활동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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