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알면서도 당했다"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6~7월 전기요금이 집계된 고지서를 받아 본 각 가정의 반응이다.
전기요금 걱정에 참다 참다 견딜수가 없어 에어컨 등의 냉방기기를 가동한 각 가정은 큰 낭패를 봤다. 전기요금이 평소의 2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전기요금이 더 부과됐다.
예상 밖의 전기요금 폭탄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요금 누진제 때문이었다. 누진제는 사용량에 따라 요금단가가 높아지는 제도다.
◇"아낀다고 아꼈는데?"..전기요금 2배 이상 부과
지난 6일 '테러' 수준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오르자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는 '전기요금조회'가 실시간 검색어로 떠 올랐다.
전기요금을 조회할 수 있는 한국전력 홈페이지(cyber.kepco.co.kr)는 접속 폭주로 서버가 마비됐으며, 한전은 '전기요금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왔다'는 문의 전화에 하루 종일 시달렸다.
실제 일산에 사는 3인가구인 이모(36세)씨의 전기요금 청구 내역을 보면, 전력 사용량이 7월 249kWh에서 8월 370kWh로 늘었는데 청구요금은 3만3910원에서 7만7000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모 씨는 "집에 100일된 아이가 있는데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 전기요금 인상 소식을 들은 후 아낀다고 아꼈는데 요금이 2배나 더 나올줄은 몰랐다"고 황당해 했다.
이처럼 각 가정의 전기요금은 평월의 2~5배까지 급증한 것은, 우선 한전이 지난달 3일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하면서 가정용 전기요금도 2.6% 오른 것도 한 몫 했다.
그러나 테러 수준의 전기 요금 주요 원인은 가정용 전기는 많이 쓸수록 더 많은 요금을 내는 '누진제'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에 고지된 전기요금은 정부가 평균 전기요금을 4.9% 인상한 것이 모두 포함되지 않아 다음달 전기요금은 이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누진제 38년째 그대로.."당장 누진제 개선 어렵다"
사용량에 따라 요금단가를 높이는 누진제는 지난 지난 1973년 석유 파동을 계기로 전기 절약을 유도하고 서민층을 보호하기 위해 주택용에만 도입했다.
누진제는 월 100kWh단위로 모두 6단계로 나뉘어 있다. kWh당 1단계 요금이 57.9원이지만 많이 사용하는 6단계는 677.3원이다. 요금 차이가 무려 11.7배나 난다.
즉, 가정에서 400kW를 사용한 경우 한 달 전기요금은 약 6만6000원 수준이지만, 600kWh를 사용할 경우에는 약18만원까지 뛰어 오른다. 사용량이 50% 늘었으나 요금은 300%로 폭등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와 에너지 환경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누진율은 1.4배이며, 대만 2.4배, 미국 1.1배 등과 대조된다.
한국전력(015760)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해야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진제가 생길 때만해도 각 가정에 전기제품이 많지 않았지만 38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전기기 보급이 늘고 대형화 됐음에도 전력 사용량 증가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당초 누진세가 전력사용량이 적은 서민층에게 원가 이하의 낮은 요금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실제로는 1인 가구에 혜택이 돌아가면서 소득재분배 취지도 퇴색했다.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가정용 전기요금은 수요를 관리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누진세로 여겨져 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란이 지속되자 한전은 7일 보도자료를 통해 "누진제도는 유지하되 3단계, 3배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며 "가구당 전기사용량 증가 등을 반영해 정부와 개선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년까지 전력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당장 누진제가 개선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전 관계자는"전력수급이 불안해서 정부가 기업들에게 인센티브까지 줘가면서 전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당장 누진세를 낮추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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